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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일본 법원은 ‘대피계획 부실’ 들어 원전가동 금지했는데 한국은 ‘무관심’

등록 2021-03-25 04:59수정 2021-12-30 14:36

[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일본 법원, 94만명 대피계획 꼼꼼히 확인
도카이 제2원전에 “재가동 금지” 판결
한국 법원 신고리5·6호기 취소 재판선
169만명 대피 실행가능성 주요쟁점 안돼
지난 1월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그린피스, 560국민소송단 회원들이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 2심 판결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그린피스, 560국민소송단 회원들이 신고리 5·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 2심 판결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고(일본원전)는 이바라기현 도카이 제2원전을 운전하면 안 된다”

지난 18일 일본 미토지방재판소가 도카이 제2원전 주변 주민 224명이 일본원전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주민들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전 사고에 대비한 주민대피계획과 계획을 실행할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전 운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죠. 이 소송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듬해인 2012년 주민들이 도카이 제2원전을 계속 운전할 경우 사고 때 방출될 방사선 피폭으로 인격권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됐습니다.

현지 언론은 일본 법원에서 비상시 대피계획 부실을 이유로 원전 가동을 금지한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 소식은 국내에도 외신을 통해 전해졌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일본 법원의 이 판결은 한국 상황과 비교해보면 그 의미가 매우 크게다가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착잡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허가 처분취소 청구 집단 소송을 6년째 이어오는 그린피스와 559명의 주민, 그리고 법률가들입니다.

주민 대피계획의 실행 가능성은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도 원고들이 제기한 주요 쟁점의 하나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을 일본 법원은 받아 줬고 한국 법원은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신고리 5·6호기의 대피계획 대상 인구는 169만여명으로 도카이 제2원전(94만명)의 거의 두 배에 이릅니다. 신고리 5·6호기 소송에서 원고를 대리한 김영희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가 일본 법원의 판결 요지를 구해 읽고 “분노하는 마음이 인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일 법원 “대피계획 실행 체제 갖추지 못했다”

비슷한 쟁점에 대한 일본 법원과 한국 법원의 판결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도카이 제2원전은 일본 정부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일제히 가동을 정지시킨 원전의 하나입니다. 이 원전이 있는 이바라키현은 동일본 대지진이 난 곳이기도 하고, 도쿄에서 100㎞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현지 언론보도를 보면, 도카이 제2원전 운영사인 일본원전은 정부 방침에 따른 안전대책을 마무리하고 내년 말 이후 재가동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대량 유출되는 긴급사태를 상정한 주민대피계획 수립은 이 안전대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한 다섯 단계의 ‘원전사고 심층 방어 개념’ 가운데 최종 단계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국 원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판결 요지를 보면 일본 법원은 심층 방어 다섯 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불충분할 경우 주민들에게 구체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주민대피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꼼꼼히 따졌습니다.

일본의 원자력재해대책지침은 원전 반경 5㎞ 이내를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기 전에 주민들을 우선 대피시키는 예방적 보호조치 구역(PAZ)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반경 30㎞까지는 방사성 물질 방출이 방출된 뒤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피난 지시를 내리는 긴급 보호조치계획 구역(UPZ)입니다. 도카이 제2원전의 예방적 보호조치구역(PAZ)와 긴급 보호조치구역(UPZ)는 14개 지자체에 걸쳐 있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각각 6만4천여명과 87만4천여명으로, 일본 원전 가운데 대피계획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일본 법원은 도카이 제2원전 대피구역 주민들을 위한 단계적 대피 방안을 그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대피해야할 주민이 90만명이 넘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에서 6만여명이 일제히 탈출하는 상황에서 87만여명의 긴급 보호조치계획구역 주민 상당수가 서둘러 피난에 나선다면 심각한 혼란과 교통 지체로 신속한 대피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법원은 긴급 보호조치계획구역 주민들의 협조가 대피계획 실현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들을 안심시킬 안전 대책이 확보돼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하지만 원자력재해대책지침에 따라 대피계획을 세워야 하는 14개 지자체 가운데 9개는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계획을 수립한 5개 지자체도 대규모 지진으로 대피 경로의 도로가 두절된 상황, 긴급 보호조치계획구역 주민들이 피난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할 주택이 파괴된 상황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본 법원은 이런 사실을 근거로 “원자력재해대책지침이 규정하는 단계적 피난 등의 방호 조치를 실현할 피난계획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져 있다고 하기엔 거리가 멀고, 5단계 심층 방호가 결여돼 있다고 인정된다”며 도카이 제2원전의 재가동을 금지했습니다.

한국도 일본처럼 비상계획구역 있지만…

한국의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은 원전 반경 20~30㎞를 방사능 재난에 대비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있습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맨 안쪽 반경 3~5㎞는 예방적보호조치구역(PAZ)이고, 그 외곽이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UPZ)입니다. 부산과 울산시, 경남도에 걸쳐 있는 신고리 5·6호기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안 인구는 169만명에 이릅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처분 취소 청구소송 재판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방사선비상계획의 실행 가능성이 검토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대피하려는 사람과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을 고려한 도로 여건, 장애인과 각종 치료·요양시설 등에 수용돼 있는 사람들을 위한 별도 대책 등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 제기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에도 원용된다고 주장한 신고리 3·4호기 방사선비상계획은 도카이 제2원전처럼 단계적 주민 대피를 전제로 합니다. 원전 반경 5㎞ 안 주민의 90%가 대피할 때까지 반경 5~10㎞ 주민들은 가만히 기다리고, 반경 5~10㎞ 주민 90%가 모두 대피할 때까지 반경 10㎞ 바깥 주민들은 대피를 시작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것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방사능 재난 발생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질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가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법원과 달리 한국 법원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김정중)는 2019년 1심 판결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의결에 결격자가 참여한 점 등을 들어 허가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도 처분을 취소하지는 않았습니다. 행정소송법상 원고의 청구가 인정돼도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기각할 수 있는 이른바 ‘사정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이 사정판결은 지난 1월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이원형)의 2심 판결에서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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