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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대통령님, 지구의 속삭임이 아닙니다. 비상사이렌입니다!

등록 2021-04-25 11:51수정 2021-12-29 14:19

[기고]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운영위원
지난 17일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특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청와대 앞 분수대를 찾아가 시위를 한 기후청년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운영위원이다. 오 운영위원을 제외하고 왼쪽부터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미어캣, 장윤석, 부산기후용사대 박주현씨. 청년들 제공
지난 17일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특사가 한국을 찾았을 때 청와대 앞 분수대를 찾아가 시위를 한 기후청년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운영위원이다. 오 운영위원을 제외하고 왼쪽부터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미어캣, 장윤석, 부산기후용사대 박주현씨. 청년들 제공

22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기후정상회의가 화상으로 개최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진행된 주요 국제 기후 행사로 40개국이 참여해 나라별 상향된 감축 공약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4분가량 발언을 이어갔다.

“각국 정상 여러분, ‘지구의 날’을 맞아 한국 국민들은 10분간 불을 끄고 지구의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문 대통령 말대로 지구의 속삭임을 들은 한국 정부의 선언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우리가 마주한 건 한국 정부의 내용없는 약속뿐이었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한국 정부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NDC(국가 간 기여방안) 상향은 “올해 안에 상향하여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는 발표에 그쳤다. 같은 약속을 했던 5개월 전에 비해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년 NDC 제출 시 2030년 배출목표(5억3600만톤) 산정 기준을 ‘배출전망치(BAU) 대비’에서 ‘절대량 대비’로 바꾼 것을 ‘1차 목표 상향’이라고 얘기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5년째 2030년 배출목표가 같은데, 목표를 도출하는 방법을 바꿨다고 목표 상향이라 얘기할 순 없다. 학교 성적도 시험 점수가 올라가야 학점을 올려주지 않나.

한국이 기존 감축 목표를 고수하는 동안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다른 국가들은 전향적 약속들을 내놓았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뒤엎고 2030년까지 50~52% 감축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화려하게 국제 무대로 복귀했다. 올해 26차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6) 개최국인 영국은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최소 68% 감축하겠다는 작년 말 약속에 이어 2035년까지 78%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옆나라 일본도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46%로 상향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 정부의 해외석탄발전 투자 중단 선언도 약속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아쉬운 수준이었다. 이미 한국의 해외 석탄발전사업은 작년 주요 사업자인 한국전력의 탈석탄 선언 이후 사실상 종결됐다. 전세계적으로 석탄발전 시장이 급격히 쇠퇴했을 뿐더러, 국내적으로도 삼성물산의 탈석탄 선언 등 기업들의 전환 움직임도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정말 진정성 있는 약속을 국제사회에 내보이고자 했다면, 지난해 한전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와 베트남 붕앙2호기 사업 지원 철회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두 사업이 가동되는 25년간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4억톤에 달하며, 이는 영국의 1년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많다.

제대로 된 약속은 없고, 생색내기만 가득했던 정부의 선언에서 청년들은 어떤 걸 기대해야 하나. 기후정상회의가 끝난 23일, 청소년기후행동과 청년기후긴급행동이 오전과 오후 각각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 발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의 기후정상회의 발언에 실질적 대책은 안 담겼다”고 비판하며 “한국 정부가 기후대응을 위해 어떤 의지도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떳떳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고 얘기했다.

지구는 우리에게 조근조근 속삭이지 않는다. 매년 세계 곳곳을 휩쓰는 재해들을 본다면, 이것은 속삭임보단 사이렌에 가깝다.

그걸 피부로 느끼는 청년들에게 기후위기는 작년과 같은 장마가 언제든 내 가족들의 일상을 앗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며, 가까운 미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무기력감이다. 그리고 겨우 얻은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며, 격변하는 산업생태계 속에서 새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없을 것 같다는 비관이기도 하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약속한 ‘1.5℃ 목표’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는 현 추세대로면 7년 안에 소진된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 각국의 중기 감축목표가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한국은 언제까지 뒷짐지고 서 있으면서 말로만 기후위기를 얘기할 것인가.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H6s오동재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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