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회의실에서 최성구 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부장(마이크 잡은 이)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회의실엔 조현병을 앓는 딸(아래 오른쪽)과 그 어머니(아래)가 함께 앉아 있다. 억울한 강제입원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지난달 30일 시행됐지만, 퇴원 환자들을 위한 사회복귀시설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그동안 한국에선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입원시키는 일이 비교적 쉬웠다.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의사의 판단이 있으면 당장 어떤 즉각적 위험이 없어도 강제로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었다. 개정되기 전 정신보건법 24조의 규정은 그동안 가족 간 재산 다툼이나 갈등 상황에서 병이 없거나, 있어도 경증인 환자까지 강제입원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날, 보러와요> 포스터. 정신질환자를 합법적으로 감금하는 강제입원의 문제를 환기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이 개정되도록 헌법소원을 제기한 박아무개(64)씨도 그렇게 강제입원된 경우였다. 2013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살던 박씨는 잠을 자던 중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박씨를 입원시킨 건 큰딸이었다. 박씨는 이전에 우울증을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큰딸은 병원 쪽에 엄마가 수십년 동안 심각한 증세를 보였고, 자신과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하지만 실제론 재산상의 문제가 생긴 큰딸이 신사동에 있는 박씨의 20억원 상당 건물과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큰딸은 박씨가 입원해 있는 동안 신사동 건물 임대료를 챙기고 박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박씨는 3개월 만에 병원 내 공중전화로 이웃주민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서울중앙지법에 ‘인신보호구제청구’를 했지만 다시 강제입원됐다. 병원에 갇힌 채로 박씨는 큰딸을 고소했고, 큰딸은 그제야 박씨의 퇴원에 동의해줬다. 병원을 나온 박씨는 다른 병원에서 받은 심리검사에선 어떤 정신병적 문제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는 정신보건법 강제입원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재판관 9인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에 따라 정신보건법은 1995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 처음으로 전면개정돼 지난달 30일부터 시행 중이다.
정신건강복지법(개정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요건은 서로 다른 병원에 속한 정신과 의사 2명의 동의와,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면서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더욱 엄격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강제입원을 겪은 이들은 여전히 개정법이 본인 의사와 무관한 입원을 허용하고 있다며 환자 인권 측면에서 아직도 미흡하다고 반발한다. 아무래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인신을 구속하는 것인 만큼,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도 2014년 9월 장애인의 의학적 치료에 대해 당사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하면서, 정신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전제한 정신보건법 24조의 ‘비자의 입원’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에서는 정신질환 입원 심사를 사법기관이나 위원회 같은 별도의 독립기구에서 판단하도록 권하고 있다. 실제 미국·독일·프랑스에선 법원이, 오스트레일리아·대만·일본에선 별도의 독립기구가 정신질환자의 입원 필요를 심사한다. 우리의 개정법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란 독립기구의 판단을 거치게 했지만, 올해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 5월께나 시행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법 시행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각 의료기관에 보낸 고지를 통해 올해 말까지 다른 병원에 추가 진단할 전문의가 부족할 경우 같은 병원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복지부가 강제입원을 까다롭게 하는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하고 있다”며 “개정법이 졸속시행됐다는 증거”라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가 개정법에 대해 “인권과 사회 안전의 균형을 이루는 법”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다.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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