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 인제대백병원 누리집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의 한국병원장으로 일했던 손문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교수(신경외과)는 최근 휴대전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며칠을 보냈다. 현지 병원에서 함께 일했던 아프간 동료들로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중 몇 명이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했어”, “도와줘”라는 조각난 메시지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2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잠을 못 이루고 초조해하기도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연락을 나누던 동료들이 외교부 등의 도움으로 전부 탈출에 성공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아프간 카불공항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391명. 이 가운데 35가구 199명은 손 교수가 지난 2010년부터 1년 반 동안 병원장으로 일했던 한국병원 동료와 가족들이다. 이 병원 건립과 운영은 한국이 아프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부터 현지에서 민관 합동으로 운영한 지방재건팀(PRT)이 총책임을 맡았다. 지방재건팀은 직업 훈련원 등 여러 사업을 꾸렸고, 인제대 산학협력단이 병원을 위탁받아 관리했다. 전체면적 3천㎡ 규모의 2층 콘트리트 건물 안에 2개의 수술실과 30개의 병상 등을 갖췄는데, 2015년 6월30일까지 운영됐다.
손 교수는 “한국 의료진 인원이 25명, 현지 직원이 한국 인원의 2.5배 규모로 채용돼 같이 일했다”며 “수술과 입원실 운영이 가능한 2차 병원급을 운영하기엔 적은 인력이었고 당장 환자식도 구하기 어려운 악조건이었다. 하지만 외교부, 한국군, 한국 경찰단,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미군 병원단과 제62의무여단, 이집트 군병원단 등이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병원을 꾸려갔다”고 말했다.
손문준 교수가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일하던 당시 모습. 손문준 교수 제공
손 교수는 아프간에서 귀국한 이후 현지 동료들과 연락을 위해 페이스북을 꾸준히 쓰게 됐다고 했다. 추석이 가까워지자 바그람에서 현지 동료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문화교류 행사를 한 기억도 많이 난다.
손 교수는 현지 상황과 관련해 “탈레반 집권 전에도 아프간 사람들은 해가 지면 언제든 탈레반을 마주쳐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왔다”며 “그런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비행기에 매달리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저곳에 남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구나, 탈출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동료는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면 부인은 탈레반과 결혼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마음이 정말 무거웠다”고 덧붙였다.
손 교수는 현지 체류 경험을 돌이키며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과 거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소수민족 중에 하자라족이라고 있는데, 이들은 몽골이 정복 전쟁에 나섰을 때 아프간에 남은 몽골인 후손으로 우리 시골 할아버지들과 똑같이 생겼다”면서 “아프간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관심을 가져보면 우리랑 멀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우리가 터키나 이집트에 스스럼없이 여행도 가고, 터키 사람들과는 언어가 비슷해 더 친근하게 느끼는데 그 나라들도 이슬람권”이라며 “이번에 한국으로 오는 아프간인들은 정말 수년간 우리와 재건사업을 함께 한 ‘특별공로자’이니,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사회가 맞아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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