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글로벌 대형 제약사인 머크사의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1만8천명분의 선구매를 최종 협의하는 단계로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청은 2만명분의 경구용 치료제 구매 비용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했다. 이는 아직 임상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나, 향후 효과에 따라 ‘위드 코로나’(코로나19와 공존)로의 안정적 이행에 버팀목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봉민 의원(무소속)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신규치료제 도입 추진현황’을 보면, 질병청은 168억원을 들여 머크사와 치료제 선구매를 협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청은 개당 92만원인 몰누피라비르를 매달 1526명에게 12개월간 사용하면 168억원이 드는 것으로 보았다. 질병청은 코로나19 경증·중등증 환자 가운데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환자 비율이 44.8%이고 의사가 처방하는 비율은 30%로 가정해, 월 1만1354명의 환자가 발생한다면 월 1526명분의 몰누피라비르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질병청은 이날 내년도 예산안에도 경구용 치료제 2만명분 194억원을 포함해 417억원 상당의 치료제 구매비가 반영됐다고 밝혔다. 질병청 관계자는 “위드 코로나에 필요한 경구용 치료제 도입을 두고 머크 이외에도 국내외 업체들과 협의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박찬수 질병청 기획재정담당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추후에 환자 발생 등 상황을 고려해서 필요하게 된다면 예비비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몰누피라비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이 진행 중인 경구용 치료제다. 1550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3상 임상을 진행하고 있고, 올 하반기께 결과가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다음달 중 미 식품의약국(FDA)에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머크사에 지난 6월에 12억달러를 지원하고 170만명분의 몰누피라비르를 공급받는 선구매 계약을 맺기도 했다. 박찬수 담당관은 “미국 정부의 선구매 계약 효력은 미 식품의약국의 사용승인 등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몰누피라비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리보핵산(RNA)에 삽입돼 바이러스 복제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항체 치료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스파이크)에 붙어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지만, 몰누피라비르는 바이러스가 몸에 퍼지는 것을 차단한다.
전문가들은 몰누피라비르가 2상 임상시험에서 3상 임상시험으로 넘어갔다는 것 자체로도 효과성이 일부 입증된 것이어서 최대한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경증 환자가 사용할 치료제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확보가 필요한 약이다. 중증으로 진행할 위험을 낮춰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선구매를 하지 않는 선택에도 위험성과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국가에서 임상에서 실패할 위험이 있어도 일단 확보하려고 한 것은 이쪽이 결과적으로 비용이 적게 든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국제적으로 수요가 많아 정부가 도입할 물량 자체가 적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큰 경증 환자에 사용하기엔 도입 규모가 적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방지환 국립중앙의료원 중앙감염병병원운영센터장은 “코로나19 대응에서 효과가 좋은 백신과 경구 치료제는 판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몰누피라비르의 2상 임상시험 결과가 괜찮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로선 입원 환자를 줄일 수 있는 효과 좋은 다양한 치료제를 확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선구매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경쟁이 심해져 불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도 있다. 당연히 선구매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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