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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수술 전날밤, 나 자신에게 가장 진실해졌다

등록 2021-11-06 15:13수정 2021-11-18 09:21

[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수술을 받다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br><br>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걸’, ‘열심히 일만 하지 말고 가족과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낼걸’,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날걸’,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걸’, ‘나 자신에게 조금 더 행복을 허락할걸.’

오랫동안 말기 암 환자를 돌보던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전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공통으로 후회하는 5가지 목록이다. 죽음을 앞두고 대체로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에게 진실해지고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수술을 앞두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술하기 전날 잠들기 직전의 시간은 굳이 죽음을 앞두고 있지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가장 진실해지는 시간이었다. 유방 절제 수술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는 큰 수술이었다. 마취를 하고 수술실에서 4~5시간 정도 있는 일은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잘 모르면 무섭기 마련이다. 수술이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또 수술 도중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공존했다. 그래서 수술하기 전에 중요하고 필요한 일들을 했다. 입원 전에는 한적한 시골의 펜션을 빌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영영 이별할 내 한쪽 가슴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또 투병하는 내내 내 옆을 지켰던 사랑하는 친정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 내게 진정한 우정과 배려를 알려준 리아(예명) 선배에게 쓸 편지의 편지지도 골랐다.

내 인생 처음으로 하는 큰 수술
믿음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

‘네게 고맙다’ 선배 편지에 왈칵

지난해 7월20일 오후 2시께 나는 입원 수속을 마쳤다. 6인실을 배정받았고, 침대는 출입구에서 두번째였다. 30대부터 60대까지 환자 연령대는 다양했고, 병실 분위기는 무겁지만은 않았다. 수술 전날엔 그동안 나를 간호하고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무릎에 통증이 생긴 친정어머니에게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다. 수술 전날엔 남편과 함께 접수 신청을 마쳤고, 남편이 일하러 간 뒤에는 리아 선배가 나와 함께해주었다.

암 투병을 해보니 알겠다. 환자도 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가족을 배려하고 주변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돌봄노동을 적절하게 분산해야 한다는 것을. 남편과 친정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돌봄 시스템에 리아 선배가 들어와 적절하게 보완해주니 큰 도움이 되었다. 돌봄노동에 지쳐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신경도 예민해졌던 친정어머니가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술 전 결정할 중요한 일 중 하나는 간병 시스템을 어떻게 짤지 계획하는 일이다. 나는 수술 전날엔 남편과 리아 선배가, 수술 당일은 친정어머니가 병원에서 대기하고 남편이 아이들을 보살피다 수술 전과 수술 직후 아이들을 데려와 내게 얼굴을 보여주기로 했다. 수술 당일은 밤샘 간호가 필요했는데, 수술 당일 오후 6시부터 간병인과 함께하기로 했다. 남편은 야간 일도 하니 간병을 할 수 없고, 친정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함께 있어 주기 힘들었다. 내가 입원한 병원은 간병인 사무실과 연계해주었는데, 전화하니 즉시 간병인과 연결됐다. 24시간 간병은 9만원인데, 전절제 환자의 경우 10만원이었다. 우리 가족은 퇴원할 때까지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입원하니 수술 전 검사가 진행됐다. 유방 초음파 검사, 자동 초음파 검사, 유방 엑스레이, 유륜 주사를 맞고 감시 림프샘 검사,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과 같은 검사들이 계속 이어졌다. 입원해서도 여기저기 검사받고 수술 관련 설명 듣고 하다 보니 바빴다. 유방암 카페에서 환우들은 유륜 주사가 많이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참을 만했다.

이날 또 성형외과 처치실에 가서 수술 부위에 그림도 그리고 수술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유방외과에서 왼쪽 가슴 조직을 피부만 남기고 전부 잘라내면, 성형외과에서 들어와 확장기를 삽입하면서 수술이 마무리된다고 했다. 그땐 설명을 들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리아 선배는 나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저녁 8시 반께 병실을 떠나면서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선배는 편지와 함께 간병인 비용에 보태 쓰라며 현금까지 봉투에 넣었다. 침대에 앉아 편지를 읽는데 울컥했다.

“(전략) 고통은 삶의 본질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주제에 천착하게 만들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배움을 얻은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다른 단단함이 있잖아. (중략) 선아 너는 내가 인간에게서 배우고 싶은 걸 가르쳐주었고, 내가 인간으로부터 받고 싶은 지지와 공감, 사랑을 주었고, 내가 인간에게서 찾고 싶었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어. 정말 고마워!! (후략)”

엄마와 가족, 선배에게 손편지
‘고마워, 사랑해’ 저절로 나와

소중한 이들에 ‘고마워, 사랑해’ 편지

편지를 보며 눈물을 계속 흘렸다. 감동의 파도에 휩싸인 나는 미리 준비한 편지에 답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라는 표현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쑥스러워 잘 표현하지 못했는데, 수술을 앞두고는 그런 말들이 잘도 쏟아졌다. 오랜만에 쓰는 손편지였고, 편지를 쓰다 보니 한장 두장 줄줄 써졌다. 리아 선배, 친정어머니, 남편에게 편지를 쓰다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자정부터는 금식이 시작됐다. 두 아이에게도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너무 지쳐 잠들었다. 그렇게 수술 전날은 바쁘고 충만하게 지나갔다.

여기서 잠깐! 수술 준비물 중에 세면도구 외에 유용했던 것을 소개하자면 작은 담요, 빨대, 가제 수건, 휴대폰 거치대가 있다. 여름에 수술이 진행됐지만, 병원은 에어컨을 켜놓아 춥게 느껴졌다. 수술 직후엔 더 춥다. 병원에서 받은 이불만으로는 한기를 느낄 수 있으니 작은 담요를 준비하면 좋다. 수술 직후 침대에 기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빨대를 준비하면 편리하다. 마취에서 깬 뒤 7시간 금식인데, 가제 수건에 물을 묻혀 입술을 닦아주고 물고 있으면 목마름이 해소된다. 또 수술 뒤 고통과의 전쟁에서 가장 유용했던 것은 휴대폰 거치대다. 양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 휴대폰 거치대에 휴대폰을 고정해놓고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나 영화 감상을 했다. 수술 후기를 두루 읽고 꼼꼼하게 준비한 것이 수술 후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사회정책부 기자 anmadang@hani.co.kr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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