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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40대 초반에 대장암 판정받고 수술받고 항암 치료했고 이제는 50줄에 들어섰습니다. 수술한 날 오밤중에 입원실로 다시 올라와 비몽사몽간에 심호흡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나도 모르게 잠은 쏟아지고, 안 하면 폐 망가진다고 했던 간호사의 말이 문득문득 생각나는 와중에 남편이 ‘잠 깨, 일어나, 정신 차리고 숨 들이마시고 내뱉어’라고 하여 반사적으로 깨서 호흡을 했었지요. (중략)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 긴박하게 움직였던 순간들이었고, 그렇게 지킨 내 생명 정말 준엄하고 엄숙한 것입니다. 허튼짓 말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지요. 대배우 김혜자님이 무슨 상 타는 무대에서 내레이션 해주셨던 대사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라는 말, 죽다 살아나 보니, 참 가슴에 와닿았더랬습니다. 막막한 환자들에게 실제적 도움이 되는 글, 경험담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시길 바랍니다.”(50대 박아무개씨)
“제 얘기를 대신 써주신 것 같아 단숨에 글을 읽고 처음으로 기자님께 메일을 보냅니다. 용인에 사는 저도 40대 중후반 암진단자입니다. 그동안 경단녀였다가 비록 기간제였지만 안정적인 곳에 취직해 재밌게 일하고 있던 석달째, 자궁내막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암 진단을 받았죠. 눈물 또르륵… (중략)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때문일까? 사춘기 딸아이 때문일까? 스트레스 때문일까?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뚱뚱하지도 않고, 가족 이력도 없고…. 처음엔 여기저기서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부질없는 시간 낭비였어요. 그냥 열심히 착하게 살아온 거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네요. 그리고 감사할 거리를 찾자고 방향 전환을 했네요. 초기 발견이라서 다행이고, 좋은 선생님 만나서 다행이고, 기간제라도 재미나게 일을 해서 다행이고, 좋은 분들 만난 게 다행이고, 사춘기 아이지만 함께해서 다행이고…. 감사거리가 넘치더라고요. 전 10월 초에 자궁, 난소, 임파선까지 적출하고 지금은 하루에도 몇번씩 산책하며 지내는 게 일상이 되었네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같은 암 환우에게 너무나 격하게 공감이 되고 그냥 한번 안아주고 싶고 그래요. 우리 힘내며 잘 이겨내 보아요!”(용인맘)
2020년 12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양선아의 암&앎’을 연재하면서 수많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사연을 담은 그 메일을 읽고 있다 보면, 암 진단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이들이 자신에게 다시 주어진 인생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암 진단 및 수술, 치료 과정에서 제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에 함께 아파해주었고 뜨거운 응원의 마음도 보내주었습니다.
암 환우들은 특히 제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고 말했습니다. 암 환자라고 하면 그저 중증 환자 정도로만 여겨지는데 암 환자가 겪는 신체적·심리적인 변화가 자세하게 그려지고 또 조금씩 다시 찾아가는 평범한 일상도 다뤄주니 이해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20여년 전 암 치료를 받은 적 있다는 한 기자는 “암 진단을 받고 억울하고 화가 많이 났고,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며 “만약 수술 전후에 ‘암&앎’ 같은 글을 읽었더라면 훨씬 덜 무섭고 덜 외로웠을 것 같다. 좀 더 담담하게 스스로를 마주 볼 수 있었을 거다”라며 제게 글을 쓸 동기 부여를 팍팍 해주었지요.
한때 암 진단을 받았고 완치한 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며 용기를 주는 이들의 메일은 또 얼마나 든든하던지요. 실제로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14~2018년 진단받은 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3%에 달합니다. 1995년 암 5년 상대생존율이 41.2%였던 것에 비하면 많이 높아졌지요. 상대생존율이란, 치료를 시작해 5년이 지난 시점에 살아 있을 확률을 암이 없는 일반 사람들의 생존율과 비교한 개념인데요, 생각해보면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질병으로, 또는 교통사고 등으로 언제든지 아플 수 있고 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그렇게 늘 우리 가까이에 있는데, 암에 걸렸다고 하면 죽음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아요. 과거보다는 진단·의학 기술이 발전했고 상대생존율도 높아지고 있으니, 암에 걸렸다고 지나치게 겁내고 두려워하기보다는 전문가와 잘 상의해 내 병에 대해 공부하면서 치료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교정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서 내분비대사 내과 질환을 본다는 한 내과 교수는 “투병기의 진솔한 내용과 감정의 흐름을 읽으면서 환자를 보는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의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환자에게 큰 영향을 주고, 같은 내용이라도 의사가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마음은 죽거나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료진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만 30살 된 아들이 위암 말기 투병을 하다 하늘나라로 갔다는 최아무개씨는 “아들이 취직이 안 돼 몇년을 고생하다가 2019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받았는데 3개월을 채 근무 못 하고 암 진단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속이 쓰리고 식욕이 떨어져 내과에 다녔는데 병의 차도가 있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내시경을 해보자고 해도, 다른 병원을 가보자고 해도 아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씨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한 병원을 2주 이상 다녀도 병이 잘 낫지 않으면 정밀검사를 받아보고 큰 병원을 가봐야 한다고 꼭 써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메일이나 댓글로 소통을 하다가 아예 독자와 만나 함께 걷고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나눈 경험도 있습니다. 남편이 위암 4기여서 고식적 항암(완치할 수 없을 때 암 진행 속도를 늦춰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을 하던 중 자기도 자궁과 난소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야 했던 분이 있습니다. 암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 자신에게도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 것이지요. 그러나 암 환자 앞에서 아내는 투정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남편을 보살펴야 했습니다. 일단 남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분은 돌봄 기간이 길어지면서 심신이 지쳐갔습니다. 그분은 “엠아르아이 기계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라며 “보호자를 위한 치유 프로그램도 절실하다”고 호소하셨지요.
지난해 7월 국회 ‘존엄한 삶을 위한 웰다잉 연구회’가 주최하고 암 치료 환경의 비효율 개선을 위한 비영리단체 ‘올캔코리아’가 주관한, ‘암 환자 심리상담 서비스 지원 토론회’에 토론 패널로 참석한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현재 대학병원 암 치료 과정을 보면 항암과 수술, 방사선, 재활 등에만 치중해 있고, 정신 및 심리 상태나 스트레스 정도에 대한 진단과 치료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치료 프로토콜에 심리·스트레스 정도에 대한 검사와 진단을 넣고, 심각한 정도에 따라 적절한 치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우울증, 불면증, 각종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돌봄 노동을 하는 가족은 어디에도 어려움을 토로할 수 없다”며 “암 환우뿐만 아니라 암 환우를 돌보는 가족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까지 제도 설계를 할 때 고려하면 좋겠다”고도 말했지요.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자체가 암환자심리상담지원서비스사업을 신설해 수요자에게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과 암치료병원과 보건소를 연계하는 방안 등이 나오기도 했는데, 실제로 제도화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투병기를 쓰면서 받은 다양한 피드백을 이렇게 정리해보니 갑자기 이 시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다// 나 없을 때 너/ 보고 싶었지?/ 생각 많이 났지?// 나 아플 때 너/ 걱정됐지? 기도하고 싶었지?// 그건 나도 그래/ 우리는 서로가/ 기도이고 꽃이다”
나태주 시인의 ‘서로가 꽃’이라는 시인데요, 아플 때 걱정해주고 기도해주고 매번 글 쓸 때마다 응원해준 독자들이 제게는 기도였고 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암 환우와 암 환우를 돌보고 치료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꽃이고 기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양선아 기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