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양선아의 암&앎
내 감정 보듬어주기
내 감정 보듬어주기
일러스트레이션 장선환
그 감정 또한 당연한 것 두려움,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 그런데요, 개인적으로 심리 관련 공부도 하고 제 감정과 생각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나무라고 내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압한다고 불안과 걱정,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외면하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요. 심리적으로 힘들면 꺼내 보는 책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인데요. 정씨는 이 책에서 “감정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의 이분법으로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감정은 한 존재의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바로미터”라고 말합니다. 그는 후회나 짜증, 무기력, 불안, 두려움 같은 것을 나쁜 감정, 없애야 하는 감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성찰이 깊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 불안하고 흔들리게 되며, 복잡한 갈래 길들을 바라보며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불안을 전제로 진행된다”고 설명하지요. 정신분석가 이승욱씨도 그의 저서 <마음의 문법>에서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다루는 정상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의 차이점을 알려줍니다. 정상적 불안은 현재 느끼고 있는 불안과 그 상황이 부합하며, 억압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죽음을 감각했을 때, 직면했을 때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는 더 생동감을 가진다”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은 지극히 정상적인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신경증적 불안은 불안의 내용과 실제 처한 상황의 상관성이 희박하며, 자신의 감정을 오히려 억압하고 검열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바다님이 느끼는 불안은 ‘정상적 불안’입니다. 암 진단에 항암 치료를 받고 수술한 상태에서 배액관까지 달고 있으니 얼마나 몸이 힘들겠어요. 그 시기 잠을 잘 못 자는 건 너무 당연하고, 캄캄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알아주는 것 같아요. ‘아… 내가 몹시 불안해하고 있구나…. 재발, 전이가 걱정되는구나….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지지를 받고 싶구나’ 하고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거죠. 내가 나의 엄마가 된 듯 따듯하게 말을 걸어주고, 내가 나를 꼭 안아주는 겁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진정되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일기를 쓰거나 나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종이에 지금 내가 느끼는 걱정이 무엇인지 적어보고 그것이 정말 합리적이고 타당한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올해 제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릴 때 ‘암 환자 스트레스 관리법’이라는 온라인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유방암 환우였고 완치 판정을 받은 상담가 이유미씨가 강의를 해주었는데요. 그는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인지적 오류로는 “꼭 그래야 돼”라고 생각하는 당위적 사고, ‘모 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적 사고, 과도한 일반화, 항상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는 파국화, 직접 물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독심술 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은 인정해주고 알아주되, 혹시 내 생각 중에 인지적 오류는 없는지 확인해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 ‘두통이 있으면 뇌에 암이 전이됐을 가능성이 높다’ 등과 같은 생각은 대표적인 인지적 오류이지요. 강연을 들으면서 저는 제가 암 진단 뒤로 나도 모르게 모든 사람을 ‘암에 걸린 사람과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류해 판단하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무의식적으로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불안으로 맘이 출렁일 때는
누구보다 ‘나’와 연대하자 힘내지 말고, 힘을 쫙 빼보세요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마음의 문법>에서 “세상의 모든 연대에 앞서 우리는 먼저 자기와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연대는 타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우정에서 시작하는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과 선한 우정을 가지고 자신과 먼저 연대하라고 권하지요. 재발과 전이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이 출렁일 때마다 저는 항상 ‘나’로 돌아갑니다. 나와 연대하는 것이지요. 내 느낌과 감정, 생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하기 싫은 일 등에 대해 집중하면서 나를 더 탐구합니다. 찜질기로 배를 따뜻하게 하거나 족욕처럼 나를 위한 사소한 일도 해봅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마음이 계속 출렁인다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 하고 생각해버립니다. 힘내지 않고 오히려 힘을 쫙 뺍니다. 이 시간에도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환우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 감정은 옳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요. 사회정책부 기자 ☞ 뉴스를 한눈에 . 한겨레 <s레터> 구독 신청하기</s레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51115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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