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역 앞 잔디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용산구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무더운 날씨에 얼음주머니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코로나19 방역과 치료에 나선 보건의료인이 놓인 처지는 모순적이다. ‘덕분에’라는 추앙, 그리고 ‘재난 앞에 공무원 혹은 의료인이라면 마땅히 감수해야 할 권리의 희생’. 지난해 9월 코로나19 방역 업무 중에 목숨을 잃은 천민우 부평구보건소 주무관의 한 동료는 “우리끼리 ‘덕분에’라는 말이 참 힘들다고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방역·치료 인력은 ‘덕분에’ 앞에 노동자의 권리,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희생’했다. 그 시간은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은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의 의뢰로 2022년 1월18~26일 경기도 내 보건소 치료·방역 인력 517명의 근무 상황, 건강·심리상태 등을 조사했다. 최근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과 연계한 경기도 심리방역 정책 개발 보고서’(심리 보고서)에 그 내용을 담았다. 숫자로 드러난 조사 결과는 이들이 희생한 것들의 성격을 짐작게 한다. 심리 보고서와 함께 <한겨레>가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공공병원의 진료와 인력 현황 통계, ‘지방재정365’를 통해 확인한 보건의료 예산 추이 등도 함께 참조했다.
노동권: 68.6%, 월 50시간 이상 초과 근무
“저희도 한 달을 계획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이잖아요. 일주일에도 수십번씩 근무 일정이 바뀌니 아무것도 못 한 채 2년을 지냈어요.” 공공병원 12년차 간호사 ㄱ씨가 말했다. 간호사 등 보건업 종사자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 업종으로 분류돼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방역 공무원의 초과 노동은 무한정 허용된다. ‘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은 ‘(감염병 관리 등) 재난 시 소속 장관 등이 시간 외 근무를 명령하는 경우
수당 지급 제한 없이 시간 외 근무를 지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었다.
그 결과, 코로나19 방역 업무를 맡은 경기도 치료·방역 인력 68.6%가 지난 3개월 월평균 50시간 넘게 초과 근무를 했다. 100시간을 넘긴 이들도 4분의 1에 이른다. 그나마 초과 ‘근무’라면 낫다. 퇴근 이후에도 업무는 단절되지 않았다. 근무시간 외에 코로나19 업무 관련 요청을 받았다는 이들이 84.5%다.
기존 보건소 업무를 축소하고, 일반 행정직과 업무를 분담하도록 하는 등의 조처가 있었다. 다만 예방접종 관리, 재택치료 확대와 병상 배정 등의 업무가 대유행 때마다 새로 추가됐다. 그때마다 인력 부족은 반복됐다. 이 과정에 방역·치료 인력의 순환근무, 과도한 노동시간을 통제할 원칙을 담은 지침은 없었다. 박건희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전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장)은 “장기간 초과 근무하는 업무는 일정하게 순환 근무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세밀한 메시지가 정부에서 나온 적은 없다. 그나마 지난해 6월까지는 재량껏 근무를 분산해보기도 했는데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해 7월부터는 보건직 공무원만으로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조사 시점인 지난 1월까지 코로나19 업무를 18개월 넘게 수행한 이들이 33.3%였다.
악성 민원 앞의 모욕감과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재난이 길어질수록 심각한 울분으로 나타났다. 울분장애 자가측정도구를 활용해 측정해보니, ‘심한 울분’ 상태에 속한 경기도 보건소 치료·방역 인력이 37.7%에 이르렀다. 가장 많은 이가 꼽은 스트레스의 원인은 모욕이나 폭언 같은 ‘민원의 형태’(49.5%)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설명자료에서 마음안심버스(이동식 상담소) 지원, 지방자치단체별 대응인력 맞춤형 심리상담 등을 통해 심리적 소진을 겪는 방역인력의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큰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 대응인력 전용 심리지원 체계를 ‘이용해본 적 없고 추후 이용 계획도 없다’는 응답이 48.9%였다. 매일 시시각각 밀어닥치는 모욕감에 견줘 드문드문 이뤄지는 심리지원은 너무 멀었다.
확진자, 밀접 접촉자와 마주치는 업무 탓에 감염병의 공포는 한층 크다. ‘감염 가능성이 크다’고 응답한 경기도 보건의료인력은 43.9%로 다른 시민(경기도민, 11.6%)보다 월등히 높다. 다만 코로나19 앞에 사람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의료진과 방역인력에겐 허용되지 않았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는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하고도 일을 나와서, (전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물 먹지 말고, 밥 먹지 말고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전했다.
길고, 끝을 알 수 없는 재난과 한정된 인력, 그에 따른 소진은 공공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소명 의식마저 꺾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느낀 교훈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 ‘힘듦, 고생, 무기력, 사람에 대한 불신’ 같은 단어를 적은 경기도 치료·방역 인력이 23.7%로 가장 많았다. ‘감사, 보람, 책임감, 헌신’ 등의 단어를 적은 이들(21%)을 앞질렀다.
코로나19 입원 환자의 70% 이상을 도맡았던 공공병원 의료진은 또 다른 차원에서 좌절을 겪었다. 감염병 대유행이 닥칠 때마다 본래 역할인 취약계층 진료를 포기해야 했다. 국가 중앙 공공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조차 코로나19 환자만을 돌보도록 병상을 비우라는 정부 지침을 따르느라, 지난해 12월 199명이었던 의료급여 입원 환자를 올해 1월 56명까지 줄였다. 2020년 3~4월에도 30명 안팎의 취약계층 환자만 입원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의료인은 그런 순간, “국가중앙병원이며 공공병원인 이곳까지 아무 대책 없이 취약한 환자들을 버리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케이(K)방역의 최전선에서 ‘국가의 얼굴’로 지낸 보건의료인들이 요청한 건, 결국 진짜 ‘국가’의 역할이다. 정부가 인력을 지원하고, 비상상황 대응을 넘어 체계를 갖추길 바랐다.
경기도 보건소 치료·방역 인력의 72.9%는 ‘현재 보건소 인력 규모로 코로나19 장기화 대응이 가능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인력 확충은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공공병원·보건소 운영과 인력에 지원하는 지자체의 보건의료 예산 비중은 2021년까지도 전체 예산의 1.6~1.7% 사이를 오갔다. 2022년 들어서야 2.07%로 늘어났다. 사람을 뽑고 숙련도를 키울 시간을 고려하면 너무 늦었다. ‘감염병 전담인력 육성’(40.2%)은 경기도 보건소 치료·방역 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짚은 대목(기타 영역)이다.
보건의료인이 요구하는 것은 또한 체계다. 업무 영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순환근무 주기, 부서 등의 체계 재정립’(28.4%)을 꼽았다. ‘표준화된 감염병 업무 매뉴얼 확립’(22.4%)이나 ‘지원인력에 대한 교육전담체계 확립’(11%)을 꼽은 이들도 적지 않다. ‘비상상황이므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의 희생을 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를, 감염병 3년차에 이르기까지 바란 셈이다.
방준호 권지담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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