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을 찾은 한 시민이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코로나19 위기가 2년을 넘겼지만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이들은 매일 발표되는 사망자 숫자로만 남았습니다. 끝없는 위기 속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했기에 ‘애도의 자리’는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기억하고 이별을 아파하고 울음을 토해내는 ‘애도의 시간’은 제대로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슬픔은 집단적인 상처가 되었습니다.
<한겨레>는 창간 34돌을 맞아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2만4441명(19일 0시 기준)을 기억하고, 촛불을 드는 애도의 자리와 시간을 마련합니다. 이 애도 기획을 통해 늦었지만 코로나 희생을 드러내고 온라인 추모소 ‘애도’(www.hani.co.kr/interactive/mourning)를 열어 ‘사회적 장례’를 시작하려 합니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수많은 가족, 친구의 슬픔을 나누고 그들을 애달프게 지켜본 의료진, 돌봄노동자 등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이 슬픔을 함께 대면하고 기록해, 코로나로 빼앗긴 삶을 숫자로만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코로나19 백신은 단기간에 개발과 사용 승인이 이뤄져 안전성 검증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접종 권고와 국민적 동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접종률을 달성했지만, 이상반응 피해 보상 심의를 받은 열명 중 여섯명은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개인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았다. ‘코로나19 백신 피해회복 국가책임제’를 공약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 40일, 정부가 ‘인과성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를 보상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이달 7일까지 총 7만7990건의 이상반응 피해 신청을 받아 5만2063건을 심의했고, 그 가운데 1만7949건(34.48%)에 대해서만 피해를 보상했다. 피해보상은 △인과성이 명백하거나 △개연성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이뤄진다.
반면, 전체 심의 건수의 65.51%인 3만4107건은 신청이 기각됐다. △명백히 인과성이 없거나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 보상에서 제외된다. 명백히 인과성이 없을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난 3월3일 기준 ‘코로나19 피해보상 심의 결과’를 보면 이런 사례는 3.59%(전체 심의 1만7316건 중 621건)에 그친다. 대다수인 59.77%(1만349건)는 백신 접종과 이상반응 발생 시기가 시간적 개연성은 있으나, 연구가 부족해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이상반응일 가능성이 더 큰 경우다. 이상반응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인과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 당사자들은 개연성이 있다고 믿는 ‘회색지대’가 발생하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 회색지대를 좁히기 위한 방안을 고민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 코로나19 백신안전성위원회를 설치해, 국내 자료를 기반으로 인과성을 평가하기 위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화이자·모더나 등 ‘전령리보핵산(mRNA)’ 백신 접종 이후 심근염과 심낭염에 대해 올해 3월과 5월 차례로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됐다. 그 전엔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반응), 아스트라제네카·얀센 접종 후 혈소판감소성 혈전증 등에 한해 인과성을 인정해왔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인과성 인정 범위는 여전히 좁고, 인과성 확인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감염병예방법에선 보상 청구일로부터 120일(4개월) 안에 지급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지만, 보통 5~6개월이 걸린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의료비 등을 먼저 지원하고 인과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되돌려받는 ‘선지급 후정산’ 주장이 나왔다. 인과성 입증 책임도 질병관리청이 지고, 입증할 수 없으면 보상하자는 주장도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이런 내용을 담아 ‘백신접종 부작용 피해 회복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100일 안에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에는 ‘정부의 인과관계 증명 책임’이나 ‘사망자 선보상 후정산과 중증환자 선치료 후보상 제도’ 등 국가책임의 핵심 공약이 사라졌다. 국회에 발의된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에 대한 질병청의 ‘신중 검토’ 의견을 보면, 정부 입증 책임과 선지급 후정산이 슬그머니 빠진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질병청은 개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의료비를 지원하는 기존 복지 제도가 있고, 최종적으로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회수’ 문제를 우려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말 ‘백신 부작용 피해자 보상규정 및 실효성 제고를 위한 개선과제'에서 적극적인 피해 보상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백신 부작용 피해는 접종의 사회적 필요성과 국가의 권장에서 비롯된 ‘특별한 희생'이기에 △질병관리청장이 ‘인과성 없음'을 증명할 수 없으면 보상하고 △명시적으로 질병청장이 입증 책임 부담을 지고 △인과성이 불충분하거나 불명확한 경우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조사·보상하는 방안을 고려하자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특별법 제정도 제안했다.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가족 협의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의사 출신 박호균 변호사는 “인과성이 없다는 걸 국가가 입증하지 못하면 인과관계가 증명된 걸로 간주하는 형태로 특별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올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국민적인 예방접종 참여 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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