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이후 10주 만에 일요일 기준 환자 수가 4만명을 넘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많은 시민들이 유전자 증폭(PCR)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김윤 ㅣ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 13일 첫 방역대책을 발표하기 하루 전 사전 브리핑에서 “과학방역 보다는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라는 표현으로 앞으로 우리 방역과 의료대응을 설명해 드리겠다”며 윤석열 정부의 방역 구호였던 ‘과학방역’ 표현을 사실상 포기했다.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이와 관련 “근거를 찾지 못할 때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집단지성으로 결론을 내겠다. 그것도 하나의 과학적 근거라고 의학에서는 간주한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집단지성이 아니라 미국·영국·이스라엘처럼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
방역당국 추산 오는 8~10월 확진자가 20만명까지 예상되는 재확산 국면에서 윤 정부가 내놓은 방역정책의 핵심은 4차 접종 대상자 확대다. 이런 결정에 앞서 가장 기본이 됐어야 할 연구는 코로나19 백신의 효과를 지속해서 평가하는 ‘코호트 연구’다. 연령군, 기저질환 별로 백신 접종 횟수에 따라 감염, 입원, 중증화 예방 효과가 어떻게 감소하는지 알아야 누가 언제 추가접종을 받을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난해 말 델타 변이 유행 당시 고령층 추가접종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다가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집단 돌파감염으로 주요국 중 한국만 치명률이 치솟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앞으로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추가접종 시점이 비슷해질 것이어서, 남의 나라 접종 연구 결과만 기다리다가 방역대책 마련 시점을 놓칠 우려가 크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집단감염을 막을 수 있는 의료환경 기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병실당 입원환자 수를 얼마나 줄이고, 간호간병 인력을 얼마나 늘려야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집단감염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코로나19 초기 전체 사망자의 50%가량 차지했던 요양원과 요양병원 사망자를 크게 줄였으나, 한국은 여전히 요양병원·시설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수준이다.
향후 방역정책에서 쟁점이 될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격리 기간이나 마스크 착용의 효과에 대한 연구도 서둘러야 한다. 외국처럼 코로나19 격리 기간을 7일에서 5일로 단축하거나 폐지할 때 확진자가 얼마나 늘어날지를 알아야 과학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또 식당과 카페에서 이미 마스크를 벗고 있는데, 사무실과 교실 등에선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방역지침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년간 제대로 된 코로나19 관련 연구가 없어 ‘과학방역’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집단지성 운운할 때가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과학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의학에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근거를 6단계로 나눈다. 신뢰도가 높은 1단계는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 2단계는 코로나19 백신 효과를 평가할 때 사용한 무작위 임상시험, 3단계는 백신 접종 효과가 얼마나 지속하는지를 평가하는 코호트 연구, 4단계는 환자-대조군 연구, 5단계는 백신 부작용 사례와 같은 환자증례다. 마지막 6단계가 전문가 의견인데, 과학적 근거로 인정했다기보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에 제한된 ‘궁여지책’일 뿐이다.
현 정부가 방역대책을 결정하는 과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집단지성을 발휘해 방역대책을 만들고 싶다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복수의 방역 대안을 만들고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영업자, 학생, 50대 백신 부작용 경험자 등 방역대책에 영향을 받는 국민의 생각을 들어야 한다. 좋은 방역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정책적 결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처럼 소수의 전문가가 모여 하루 이틀 논의한 결과를 집단지성이라고 강변하면 특정 집단의 생각을 사회 전체의 생각으로 착각하는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이 크다. 방역대책에 큰 영향을 받는 장애인, 자영업과 소상공인 분야 전문가는 물론, 정신건강과 행동과학 전문가도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