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을 찾은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뇌질환 진단을 받은 30대 남성에게 정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 보상과 관련해 진행 중인 9건의 소송 가운데 첫 1심 판결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나옴에 따라, 백신 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피해인정 및 보상 범위가 넓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30대 남성 ㄱ씨가 질병관리청장을 상대로 낸 ‘예방접종 피해보상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질병청은 “추가적인 소명이 필요하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지난해 4월29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ㄱ씨는 이튿날부터 발열 증상이 나타났다. 5월1일에는 양다리 저림과 부어오름, 차가움과 뜨거움이 반복되는 감각 이상, 어지럼증을 느꼈다. 같은달 2일 응급실에 내원해 검사받은 결과 뇌에서 소량의 출혈성 병변이 확인됐고, 8일에는 뇌내출혈과 함께 뇌혈관 기형의 일종인 대뇌해면기형을 진단받았다. 20일에는 다리 저림 관련 단발 신경병증도 진단받았다.
ㄱ씨의 배우자는 피해 보상으로 정부에 진료비 337만1510원과 간병비 25만원을 신청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보상위원회)를 열어 “접종 14일 후 다리 저림이 발생해 시간적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해면상 혈관기형이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다리 저림 증상은 백신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서 예방접종과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ㄱ씨 쪽은 질병관리청의 보상 거부에 불복해 지난 2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ㄱ씨의 증상과 질병이 다른 원인(뇌혈관 기형)에 의해서만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며 “ㄱ씨는 예방접종 이전에는 매우 건강했고 신경학적 증상이나 병력도 전혀 없었는데 예방접종 바로 다음 날부터 두통, 발열 등의 증상이 발생했다. 이는 질병관리청이 이상 반응으로 언급한 증상”이라고 밝혔다. 백신 접종 후 이상증상이 나타났다면, 질병청이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상당한 정도의 증명을 하지 않는 한 해당 증상이나 질병과 백신 사이 역학적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진료기록에 의하면 예방접종 후 불과 1~2일 뒤에 발열, 두통 및 다리 저림이 나타난 사실이 인정되고, 예방접종과 ㄱ씨의 증상 사이에 명백한 시간적 밀접성이 존재한다”며 보상위원회가 ㄱ씨의 다리 저림 증상 발현 시점을 접종 14일 후로 본 오류도 지적했다.
정부는 보상위원회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해 피해보상 여부를 정하고 있다.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관련성이 의심되는 질환에 대해서도 지원하고, 상한도 의료비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사망위로금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각각 인상했다. 예방접종 42일 내 원인불명 사망시 위로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 이달 13일까지 심의가 완료된 피해보상 신청 사례는 6만4984건인데, 사망 8명을 포함해 보상은 2만801건(약 32%)만 이뤄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록 ‘접종 권고’이기는 하나, ‘방역 패스’ 시행으로 사실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의무에 가까웠던 탓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보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순영 가톨릭대 명예교수(미생물학교실)는 “출혈이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원인에 의한 건지 백신 접종의 영향인지 구별해내기는 어렵다”며 “원인을 구별하는 작업보다 폭넓게 부작용을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질병청이 모든 질병의 원인을 증명하는 데엔 한계가 있으며, 백신과 이상반응 인과관계 평가는 법원이 판단할 영역이 아니라는 우려도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보상위원회에서 논의하는데, 그 판단을 법원이 뒤집으면 위원회의 의미가 없어진다”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인과관계와 무관하게 일정액 안에서는 빠르게 보상해주는 게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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