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을 찾은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뇌질환 진단을 받은 피해자에게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질병청 재논의 과정에서 뒤늦게 피해자의 증상이 뇌출혈이 아닌 백신 관련성이 인정되는 ‘길랭 바레 증후군’(말초·뇌신경 등에 나타나는 염증성 질환)으로 추정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뇌질환 자체를 보상 대상으로 인정한 건 아니어서 유사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일 국회와 질병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질병청은 지난달 21일과 25일 신경분야 자문회의와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를 열고 피해자의 증상에 대해 논의한 결과 ‘피해자의 증상이 길랭 바레 증후군으로 추정가능해 의료비 등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길랭 바레 증후군은 코로나19 백신접종 관련성이 의심되지만 인과성 입증은 부족한 질환 가운데 하나다. 이에 질병청은 이르면 다음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하고,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기준(심의기준 ④-1)에 따라 최대 5000만원의 의료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앞서 30대 남성 ㄱ씨는 지난해 4월29일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뒤 다음날부터 발열, 양다리 저림, 감각 이상, 어지럼증 등의 증상을 느꼈고 5월 초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ㄱ씨는 백신 피해 보상을 신청했지만, 질병청은 “시간적 개연성이 부족하다. 예방접종과 뇌출혈은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며 1월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ㄱ씨는 질병청장을 상대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 8월 승소했다. 하지만 질병청은 보상을 거부하고 곧장 항소했다. 질병청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뇌출혈과 백신간 연관성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유럽의약품안전청(EMA) 등의 공식 입장이 없다. 국내 코로나19 백신안전성위원회도 연관성이 뚜렷치 않다고 본다”며 항소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질병청 이런 입장은 항소 대응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가 ‘ㄱ씨의 질환이 뇌출혈이 아닌 길랭 바레 증후군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바뀌었다. 질병청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의원(정의당) 등에 보낸 보고서에서 “일부 (전문위) 위원이 ㄱ씨의 증상에 대해 뇌출혈이 아닌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추가 의견을 제시했다. 자문의견을 종합하여 (1심 재판부) 판결의 취지대로 진료비 간병비를 지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질병청의 이번 결정은 뇌질환 자체를 백신 이상 반응으로 인정한 건 아니어서, 뇌질환 피해자는 앞으로도 개별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질병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까지 코로나19 백신접종 피해조사반이 피해 보상을 검토한 뇌졸중 사례는 중증 655건·사망 209건 등 총 864건이다. 이 가운데 피해 보상 등 의료비 지원을 받은 경우는 0건이며, 현재 8명의 뇌졸중 환자가 정부와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피해보상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혜숙 의원은 “코로나19 백신은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충분한 임상시험을 거치지 못한 채 긴급사용승인 됐기 때문에 접종 후 이상 반응이 생겼다면 국가가 마땅히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강은미 의원은 “인과관계의 가능성 만 입증되는 경우에도 피해 보상이 인정된다면 피해자들의 아픔을 덜 수 있을 것”이라며 “제도 개선을 위한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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