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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주치의 제도 참여 환자들 “응급치료·심리안정에 큰 도움”

등록 2023-02-16 05:00수정 2023-02-16 08:40

서울로 가는 지역 암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
④ 지역 필수의료 해법
지난해 12월22일, 강정훈 경상국립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 사는 폐암 환자 정아무개씨 집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지난해 12월22일, 강정훈 경상국립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경남 거창군 웅양면에 사는 폐암 환자 정아무개씨 집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경남 거창군에 사는 고아무개(80)씨는 위암 환자다. 전국 최초로 거창군에서 시행 중인 ‘암 환자 건강주치의제’(지역암센터·보건소 연계 사업)에 등록해 의료진의 방문 진료를 받고 있다. 고씨는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과 함께 두차례나 종이컵 한컵 반 정도의 피를 토했지만, 기운이 조금 없을 뿐 크게 아픈 데가 없어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이튿날 고씨가 방문 의료진에게 증상을 설명하자, 의료진은 토혈의 양을 볼 때 응급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 고씨는 적기에 십이지장 출혈 시술을 받을 수 있었다.

경남지역암센터가 거창군 보건소·적십자병원과 팀을 이뤄 방문 진료로 환자 건강을 관리한 결과,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환자의 우울감, 정보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문 진료에 대한 암 환자 만족도 역시 매우 높았다. 거창군 보건소가 건강주치의제에 등록된 암 환자 301명 중 5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50명 중 44명이 “암 환자로 지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50명 중 45명은 지속해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방암 환자 ㄱ(50)씨는 이 인터뷰에서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설명을 해주니까 정보도 많이 알게 돼 좋았다”고 했다. 지역 병원이 수도권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는 의료 기반시설과 신뢰도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멀리 떨어진 큰 병원에 가더라도 별다른 처치를 받기 어려운 말기암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 보호자 없이 홀로 지내온 최성훈(가명·61)씨는 간·췌장·소장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는데, 장폐색으로 복통이 심해지자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 의료진은 진통제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가며 최씨를 돌봤고, 보건소 의료진은 주 1~2회 방문 간호를 했다. 최씨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할 때도 보건소에서 입원 수속과 간병인을 지원했다. 이후 최씨는 통증과 우울감이 줄었다고 했다. “구토를 세숫대야에다 할 정도로 힘들었지. (아프면) 백명의 사람들이 (비대면으로) 말을 들려주는 것보다 한 사람이 찾아와서 말해주는 게 더 위로가 되거든.” 최씨가 고인이 되기 전 의료진에게 남긴 말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을 설계한 강정훈 경상국립대병원 교수(혈액종양내과·경남지역암센터 연구부장) 등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와 보건소 직원도 만족도가 높았다. 설문에 참여한 8명 전원이 ‘자신의 일이 중요한 일이고 수행하는 업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보건소 직원 ㄴ(32)씨는 “암 환자의 증상이 항상 같은 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데, 교수님에게 방법을 구할 수 있으니까 케어도 편하고 환자들에게도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환자와 의료진의 만족도가 높은 이 사업을 확대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재원 투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사업 연구보고서를 보면 △다른 병원에 다니는 환자의 의료 정보 제한에 따른 상태 파악의 어려움 △보건소 직원의 업무 부담 △참여 의료진의 자발적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나타났다.

강 교수는 “저희는 지역암센터와 지역 보건소가 협업하는 것이 가능하고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보건소와 지역암센터가 참여하고 싶도록 당근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선의에 의존하는 사업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에 참여한 거창적십자병원(공공병원) 최준 원장은 “2차 공공병원이 이런 롤 모델을 만들어줌으로써 다른 일반 개인병원들이나 민간병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는 역할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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