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논쟁이 한동안 우리 사회를 달궜다. 지금은 다소 주춤해보이지만, 이 문제는 결코 뒷전으로 밀쳐둘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화두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고자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를 실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스웨덴의 복지모델을 여섯 차례에 걸쳐 집중 해부한다.
“암수술 두번에 104만원 들어…치료비 걱정 없어” 스웨덴 암환자 올레씨 본인부담 상한액 ‘연 47만원’
그 이상땐 입원비 빼고 공짜
병가 중에도 월급 90% 나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시간 떨어진 베름되에서 사는 올레 브렌드스트룀(59)은 1년 전에 암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병은 갑자기 찾아왔다. 6개월 전부터 등이 아팠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 날, 우편물을 가지러 마당에 나가려다 멈칫했다. 도무지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발버둥을 치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가족들은 깜짝 놀라 그를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각종 검사가 시작됐고 결과는 암담했다. 이미 등과 다리로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다.
암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차 수술이 진행됐다. 나중에야 암이 전립선에서 발원했다는 걸 알았다. 2차 수술이 이어졌다. 브렌드스트룀은 “너무 아프고 무서워 곧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두 차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섯 번의 방사선 치료도 탈없이 넘겼다.
재활병원에서는 한 달 만에 나왔다. 퇴원을 불안해하던 그에게 담당 의사는 “재활병동이 집으로 옮겨간다고 생각해라. 집에서도 비슷한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실제로 재활병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간호사와 물리치료사를 보내 치료를 도왔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그를 찾는다.
두 차례의 수술에 재활치료까지 받은 브렌드스트룀은 진료비와 약값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단 한순간도 돈 걱정을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돈이 조금 쌓였다”고 웃었다. “치료비 부담이 없고, 사회보험청에서 병가수당이 나오는데 아파서 이를 쓸 일이 없으니 돈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1년에 진료비가 900크로나(15만원)를 넘으면 바로 ‘무료 진료카드’가 나온다. 이때부터 병원 치료비는 모두 공짜다. 약값도 1800크로나(32만원) 이상은 내지 않는다. 환자가 부담하는 상한금액은 국회에서 결정하는데, 1998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입원비는 하루에 80크로나를 별도로 낸다. 입원했을 때 먹는 세 끼 식사와 간식 값이다. 올레는 진료비 2700크로나(47만5000원)에 40일 동안의 입원비(80크로나×40일) 3200크로나를 더해 모두 5900크로나(104만원)가량을 냈다.
스웨덴 주택공사에서 일하는 브렌드스트룀은 몸이 아팠던 1년 동안 병가를 냈다. 병가가 인정되면 사회보험청에서 소득의 80%를 수당으로 준다. 그의 회사는 직원이 아팠을 때 별도로 10%를 더 수당으로 얹어준다. 그는 결국 소득의 90%를 받은 셈이다. 병가는 법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직장을 잃을 걱정도 없다. 그는 “그동안 너무 많은 혜택을 받았다”며 “내가 받은 모든 서비스에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브렌드스트룀은 월급의 약 30%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세금이 너무 많아 불만이 없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질문이 돌아왔다. “당신이 이런 혜택을 받는다면, 세금에 불만을 가질 것 같은가?”
스톡홀름/글·사진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골수이식 3천만원 필요…없는사람 죽는 수밖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기영씨 항암치료에 2천만원 써
회사에선 아프다고 해고
생활비 없어 카드 대출
“모아 놓은 돈은 없지….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눈앞이 깜깜했죠.” 다섯 아이의 아빠인 이기영(가명·45)씨는 2009년 7월 느닷없이 암 진단을 받았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소식을 들은 아내는 울기만 했다.
용접일을 하는 이씨는 2008년부터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픈 날이 많았다. 정형외과에 갔지만 원인을 모르겠다는 진단만 돌아왔다. 파스를 붙이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갈수록 어지러운 증상까지 더해졌다. 다리에 힘이 없는데다 숨이 차서 계단도 오르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쉴 수도 없었다. 그러다 결국 입에서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갔다.
회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이씨를 해고했다. 부당한 해고였지만 더 일할 상황도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처럼 병가제도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회사마다 사규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지옥 같은 항암치료가 시작됐지만, 돈 문제가 더 큰 고민이었다. 그동안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저축 한 푼 하지 못했다. 보험도 들지 못했다. 급한 대로 형제들한테서 돈을 빌렸다.
항암치료는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다. 한 달 치료받고 3주 쉬고를 반복했다. 밥 냄새만 맡아도 구토를 하는 통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다행히 항암치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각종 검사와 1차 항암치료를 하는 데 이씨는 1200만원가량을 썼다. 모두 빌린 돈이다.
항암치료를 마치자 각종 검사가 따라붙었다. 병원에선 암이 재발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5년 동안 추적관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혈액검사(1회 10만원), 골수검사(1회 55만원), 세포검사(1회 68만원)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벌써 800만원이 들어갔다. 그마저도 모금기관인 ‘사랑의 열매’로부터 골수이식 수술비로 지원받은 1400만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골수이식을 하려면 최대 3000만원까지 들어간다는데, 그에게 남은 돈은 600만원뿐이다. 이씨는 “골수이식 기증자까지 찾았지만 돈이 없어 수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암이 재발하면 내 인생은 끝장”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형제들에게 빌린 돈은 언제 갚을지 막막하다. 생활비가 없어 카드사에서 대출받은 1000만원도 생활을 압박한다. 이씨는 “가뜩이나 부족한 수급비에서 매달 14만원씩 카드사에 주고 있다”고 말했다. “없는 사람은 병이 깊어지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한탄할 뿐이다.
중증질환에 걸린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이처럼 큰 것은 우리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웨덴처럼 본인부담상한제가 있어 1년 동안 진료비가 200만~400만원을 넘을 경우 건강보험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가 상한액수에서 빠져 환자의 부담이 크다. 특히 암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7년 71.5%에서 2008년 69.8%로 줄었다. 500만원 이상 고액환자 보장률도 67.6%에서 64%로 낮아졌다. 우리나라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글·사진 김지훈 김소연 기자 watchdog@hani.co.kr
■ 궁금합니다
무상의료 하면 재정 파탄난다?
스웨덴은 어떤 질병에 걸려도 1년에 진료비와 약값을 합해 2700크로나(47만5000원) 이상을 내지 않는다. 본인부담 수준만 보면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무상의료가 실현되면 진료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의료재정이 파탄나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보건통계(2010년)를 보면, 스웨덴의 국민의료비 비중은 1980년 국내총생산(GDP)의 9%에서 1990년 8.3%, 2008년 9.4%를 차지했다. 국민의료비 비중에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암수술 두번에 104만원 들어…치료비 걱정 없어” 스웨덴 암환자 올레씨 본인부담 상한액 ‘연 47만원’
그 이상땐 입원비 빼고 공짜
병가 중에도 월급 90% 나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시간 떨어진 베름되에서 사는 올레 브렌드스트룀(59)은 1년 전에 암으로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아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병은 갑자기 찾아왔다. 6개월 전부터 등이 아팠지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 날, 우편물을 가지러 마당에 나가려다 멈칫했다. 도무지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발버둥을 치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가족들은 깜짝 놀라 그를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각종 검사가 시작됐고 결과는 암담했다. 이미 등과 다리로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다.
전립선암 올레 브렌드스트룀
“골수이식 3천만원 필요…없는사람 죽는 수밖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기영씨 항암치료에 2천만원 써
회사에선 아프다고 해고
생활비 없어 카드 대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기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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