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사고수습본부가 홍콩과 마카오에서 입국하는 여행객에 대해서도 전수 검역조처를 결정한 가운데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홍콩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스마트폰에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있다. 인천공항/공항사진기자단
국내 항공사 승무원 ㄱ씨는 지난달 27일 중국에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퀵턴’(체류하지 않고 당일 왕복비행)을 다녀왔다. 이후 열흘쯤 지나 잇몸이 아파 치과 치료를 받으려고 예약했지만, 진료 당일 몇시간 전에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19의 집단발병지인 중국을 다녀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반 중국 입국자들과 달리 현지에 체류한 것도 아니지만, 여권상 입출국으로 기록된다는 점 때문에 병원 진료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이다. ㄱ씨는 “업무상 중국 비행을 피할 수도 없는데, 앞으로 병원 진료를 어떻게 받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선 동네병원들의 진료거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7일부터 보건당국의 검사 확대 방침에 따라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 등을 다녀온 이들도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제때 일반진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보건당국은 환자가 2주 내 중국과 코로나19 발생 위험지역 방문 이력이 있어도 발열과 호흡기 관련 증상이 있는 의심환자가 아닌 이상 의료기관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일반진료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도 병원마다 진료거부 사례가 속출하는 것은 뒤늦게 감염에 확진되는 환자가 있을 수 있다는 등 ‘만일의 경우’를 우려해서다. 병원은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감염에 대비한다는 취지로 진료를 거부하고 있지만, 긴급히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타이(태국)와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에서 입국한 이들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되면서 진료거부 대상은 더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날 <한겨레>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에 “타이에서 돌아온 지 3일 정도 됐다. 열이나 기침 같은 코로나 증상은 없는데 정형외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문의하자, “저희는 좀 곤란하다. 서울의료원 같은 데 가시면 안 되느냐”는 직원의 답이 돌아왔다. 보건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냐고 재차 물었더니, 안내 직원은 “그렇진 않지만 수술 환자들도 다니는 곳이니 다른 병원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동남아 방문 이력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한 사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간호조무사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한 회원은 “마카오를 다녀온 지 2주 지난 환자였는데 열이 없었지만 보건소로 보냈다”며 “진료를 봤어야 했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한 맘카페에선 “중국 방문 이력은 묻지도 않고 아이가 열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이 시국에 병원에 오면 어떡하느냐’며 진료를 거부당했다”는 호소글이 올라왔다.
허목 전국보건소장협의회장(부산 남구보건소장)은 “병원에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서 중국 등 방문 이력이 뜨면 무조건 보건소에 가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병원 감염에 철두철미한 것은 좋지만 (환자가) 큰 질환일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 의료기관 대응지침에 따라 의심환자는 선별진료소에 보내고, 문제가 없다면 다시 진료해야 한다”며 “전문가 집단에서도 막연한 불안감에 특별한 근거 없이 진료 거부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의료법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가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진료거부 관련) 현장점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의료현장 반발을 우려해 실제 처벌 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반면 감염증 사태로 병원에 가야 할 환자들이 진료를 미루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교수는 “고혈압·고지혈증처럼 평소 관리를 잘해야 하는 환자들이 코로나 사태로 평소보다 절반 이상씩 진료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며 “혹시 모를 위험(코로나) 때문에 현재의 위험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수지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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