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사회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보건 분야를 전공해 건강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죠.” 왜 의사가 시민운동 활동가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명희 센터장의 답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완성도가 낮더라도 오는 8월까지는 코로나19 시민 백서를 내려고 해요.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이번 코로나 사태가 내년까지는 갈 겁니다. 바이러스가 2차 유행하기 전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죠.”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소장 김창엽)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의 말이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김 센터장은 2010년에 8년간 조교수로 있던 을지의대에 사표를 내고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합류했다. 2006년 창립한 연구소는 처음 4년은 상근연구원을 두지 않다 2010년에야 김 센터장 등 3명의 상근연구원을 확보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지금은 상근연구원이 5명이며 후원 회원도 설립 때 200명에서 400명으로 늘었다. 김 센터장은 올해 초부터 임기 2년의 한국건강형평성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8일 서울 남성역 근처 연구소 사무실에서 김 센터장을 만났다.
교수 급여의 3분의 1 정도만 받고 그가 10년간 해온 일은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 차별 없이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정부 보건의료 정책을 감시하는 활동이다. 예컨대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속한 학자들이 건강보험 체납을 두고 어떻게 체납자 수를 줄일까를 연구한다면 그는 불안정 노동을 하는 생계형 체납자도 의료혜택을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관점 아래 보고서를 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시민 백서를 내어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을 인터뷰와 현장 실태 조사로 드러냈다. 간호사 등 일선 보건의료 노동자와, 철도·지하철 등 공공서비스 노동자들도 감염 위험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도 백서는 강조했다. 3년 전에는 헌법에 건강권을 명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두 달 뒤 나올 코로나19 백서엔 뭐가 담길까. “보건 의료 쪽에서 몇 가지 제도 개선을 요구할 겁니다. 먼저 파견 의료 노동자의 보호책임이 누구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의료진을 대구로 보냈잖아요. 지금은 책임 주체가 불분명해요. 또 이번 사태에서 보듯 병원이 가장 위험한 공간이 되고 있잖아요. 병원의 위험 요인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도 요구하려고요. 보건의료 노동자가 건강해야 환자도 잘 돌보죠.”
그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을 두고는 “잘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노동 관점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이번에 바이러스가 퍼진 콜센터나 물류센터를 보세요. 방역 당국이 앞서 그곳의 노동환경을 미리 파악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겁니다. 노동 관점이 부족한 탓이죠. 또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아프면 쉬라고 하지만 개별 노동자의 업무 실적이 팀 평가와 연계돼,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쉬기가 어려워요. 환자와 밀접히 접촉하는 간호사와 간병인, 요양보호사도 지금 적절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적 약자가 더 고통받는 문제도 메르스 때와 다르지 않단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한때 노숙인쉼터에서 신규 입소자를 받지 않았어요. 한 공공병원은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원하는 한 노숙인을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며 되돌려보내기도 했죠. 코로나를 막는다며 공공도서관 문을 아예 닫는 것도 문제죠. 정부가 시민단체들과 충분히 협의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답을 찾았으면 해요.”
2010년 의대 교수서 엔지오 활동가로
힘없고 가난한 이들 건강권 연구
메르스 이어 ‘코로나 백서’ 준비중
“지난 10년 건강 형평성 더 악화
사망률 등 지표 공식 모니터링을”
400명 후원자에 상근연구자 5명
물론 메르스 때와 달라진 점도 있다. “대한예방의학회나 여러 언론이 이번 사태 초기부터 혐오나 차별을 경계하는 인권 중심의 대응을 강조했어요. 우리 연구소가 메르스 때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요.” 그는 메르스 시민 백서를 내고 의료 관련 학회 등의 요청으로 수십 차례 발표하는 기회를 가졌다.
회원 400명 후원금으로 상근연구자 5명이나 둘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은 의료나 학계에서 자리를 잡았으면서, 우리 단체가 하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분들이 후원금을 냅니다. 다른 시민단체보다는 조금 더 내는 편이죠. 회원 중엔 586세대들이 많아요.”
지난 10년 건강 불평등은 어떤 변화 곡선을 그렸을까. “더 나빠졌죠. 건강 형평성을 위해선 소득과 노동 불평등 개선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소득이나 노동 불평등은 더 악화했죠. 흡연만 봐도 30년 전에 남자는 다 담배를 피웠어요. 지금은 정보 접근이나 주변 환경, 의지력에 따라 흡연율이 달라요. 여성비만도 소득과 역관계입니다. 비만은 식생활이나 자기관리 문제이죠. 돈이 없으면 쉽지 않아요. 산재나 스트레스도 사회 불평등과 관련이 커요.”
반면 건강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커졌단다. “지금은 의료 관련 학회 어디를 가도 건강 불평등 관련 주제 발표가 있어요. 이제 더는 부차적 이슈가 아닙니다. 학계의 시민권을 획득했죠. 정부도 4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2016~2020)을 만들 때 건강 형평성 제고를 총괄 목표로 처음 제시했죠. 지금 만들고 있는 5차(2021~2030)에서는 흡연이나 음주, 운동 등 모든 요소에 다 집어넣고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겠다고 해요.”
건강 형평성을 위해 지금 당장 정부가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소득 분위나 남녀별로 사망률이나 흡연율, 산재 사망 등 지표들이 어떤지 공식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겁니다. 영국은 1980년부터 하고 있어요. 이미 건강불평등 백서도 나왔고요.”
연구소가 생각하는 한국 보건의료정책의 지향점을 묻자 그는 “건강은 사회적이다는 명제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공공의료 확충도 그런 사고에서 나올 수 있단다. “코로나를 보세요. 자기 혼자 건강을 열심히 지켜도 사회가 함께 가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잖아요. 건강을 달성하는 결정요인을 사회가 갖추고 있을 때 내 건강도 지킬 수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