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관계자 등이 지난 1일 오후 요양보호사와 입소자 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광주 동구 아가페실버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면 쉴 수 있도록’ 하는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구체적인 밑그림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월 100만원 또는 평균 소득의 30~100%를 보장해주면서 최대 360일까지 유급병가를 주게 되면, 최대 1조7천억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제도 설계안도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병수당 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 휴가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임승지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험제도연구센터장은 각계 자문위원들과 함께 설계한 ‘상병수당’ 도입 방안 예시를 공개했다. 아픈 뒤에 최대 180일까지 평균 소득의 50%를 상병수당으로 보장해주려면 최소 8055억원이 필요하다. 노동자 본인은 물론이고 룩셈부르크처럼 3살 이하 자녀가 아플 때도 열흘간 상병수당을 보장해주려면 최대 1조7718억원까지 재정이 소요된다. 이때 혜택은 264만명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임 센터장은 “국제사회보장협회 182개국 사례를 검토했는데 상병수당을 사회보험료 방식으로 운영하는 나라가 대부분이었다”며 “우리도 기존 건강보험 체계에서 별도의 상병수당 보험료를 걷는 방식이 적합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국제노동기구(ILO)는 상병수당 재정에서 정부가 50% 이상을 지원하도록 권고한다며,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충분한 국고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지원 등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는 ‘문재인 케어’ 로드맵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5년간 평균 3.2%씩 인상하고 있지만, 최근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겨 보험료 인상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연구센터장은 “재정이 넉넉히 남아 있는 산재예방기금에서 영세사업장의 상병수당을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21대 국회에는 상병수당 지급 근거를 명시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업무외 질병’도 유급병가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이 법안을 묶어서 ‘아프면 쉴 수 있는 법’이라고 부른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인 이찬진 변호사는 “유급 또는 무급병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병수당만 도입되면 특수고용직이나 일용직들은 해고될 위험 때문에 실제로는 휴가를 쓸 수 없을 것”이라며 ‘병가 법제화’를 주장했다. 현재 공공부문과 일부 대기업만 ‘유급병가’를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으로 보장하고 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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