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인근에서 16일 오후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16일 정부는 ‘대규모 재유행의 초기 단계’로 현 상황을 규정했다. 앞으로도 확진자가 늘어날 위험요인이 곳곳에 지뢰처럼 깔려있는 데다가, 방역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상태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n차 감염’까지 우려되고 있는 탓이다. 정부는 지난 2~3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신천지발 1차 대유행 때보다도 “엄중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 1차 대유행 이어 이번에도 교회가 진원지
이날 0시 기준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79명에 달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만 245명이 새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천지발 1차 대유행을 겪고 있던 3월8일(367명) 이후 161일만에 신규 확진자 규모가 가장 많다. 사흘 연속 신규 확진자 수가 세자릿수를 기록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확진자 급증세는 교회발 집단감염이 견인했다. 가장 큰 진원지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사랑제일교회다. 이날 낮 12시 기준 사랑제일교회 관련 누적 확진자는 249명까지 늘었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불과 닷새만이다. 양성률도 약 25%로 높게 나왔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교회 쪽이 제출한) 명단이 부정확해서 모든 교인을 찾고 격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교인도 다수 있다”며,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에게 진단검사를 받아달라고 호소했다.
추가 확진자가 잇따를 수도 있다. 이날 중대본은 교회 신도들이 참석했던 △8일 경복궁 근처 집회 △11~12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근처 서명운동 부스 등에서 추가 전파가 우려된다고 지목했다.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 성향 단체들의 대규모 집회에도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전광훈 목사도 이날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석했고 연단에 올라 발언까지 했다. 집회에서 함께 구호나 함성을 외치고, 집회 전후에 음식을 나눠먹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염된 상태였던 교회 신도 누군가를 통해 다른 집회 참석자들에게 전파가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아직 이 교회 신도들의 정확한 집회 참석 인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경기도 용인시 우리제일교회에서도 이날 21명이 추가 확진돼 누적 확진자가 126명에 이른다. 서울 양천구 되새김교회, 경기도 고양시 기쁨153교회와 반석교회 등 최근 2주간(14일 0시 기준) 교회와 관련된 확진자만 193명에 이른다. 이 집계 이후로 지난 이틀 사이에 사랑제일교회 230여명, 우리제일교회 50여명이 추가 확진된 터여서 교회 관련 확진자 수는 500여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교회에 대한 방역 수위를 너무 일찍 완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수도권 개척 교회 등에서 집단감염이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달 10일부터 2주동안 정규 예배 이외에 교회와 관련된 각종 소모임과 식사 등을 금지하도록 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2주만에 방역 강화 조처가 해제됐고,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교회들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노래를 부르거나, 예배 뒤에 단체로 식사하는 활동 등을 통해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오후 경기도 용인의 한 교회에서 신도들이 ‘거리두기’를 지킨 채 앉아서 예배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고령층 확진자 많아 의료체계 점검 시급
정세균 총리는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이번 교회발 집단감염은 신천지 사태보다 양성률이 높고 n차 전파 가능성이 커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정부가 이날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지만, 추가 전파 우려가 큰 상황이다. 산발적 집단감염의 고리가 적지 않은데다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갑자기 큰폭으로 늘면서 역학조사가 전파 속도를 따라잡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정부는 다소 완화된 수준에서 거리두기를 2단계로 올렸다. 2단계에서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모임은 ‘금지’ 대상이지만, 2주간은 모임 취소를 강력히 권고하는 수준으로 완화했다. 생업 등에 줄 수 있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정부는 밝혔으나, 방역 수위를 좀더 높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대규모 2차 유행이 시작될 경우, 가장 큰 우려는 의료체계다. 현재 확보한 병상 규모와 올초부터 피로가 누적된 의료진들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최근 60대 이상 고령층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6일 신규 확진자 279명의 연령대별 분포를 보면, 60대가 56명으로 20.1%를 차지했다. 70대는 11.1%(31명), 80살 이상은 2.2%(6명)였다. 이날 신규 확진자 3명 가운데 1명이 60살 이상 고령층인 것이다.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 가운데 60살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23.9%로, 4명 중 1명 꼴이었다. 80대 이상 고령층의 치명률은 25%에 이른다. 고령층 등 고위험군을 치료할 중증 환자 치료병상 확보가 시급한 까닭이다.
이날 낮 2시 기준으로, 수도권 지역의 중증 환자 치료 병상은 339개 가운데 242개(71.4%)가 차있다. 남은 병상은 인천 7개, 경기 9개, 서울 81개 등 97개(28.6%) 뿐이다. 수도권의 감염병 전담병원 병상도 1479개 가운데 797개(53.9%)만 사용 가능하다. 수도권 지역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격리 상태로 치료를 받는 환자 수가 1103명(16일 0시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격리 환자 가운데 서울과 경기 지역 환자만 785명(71.2%)에 이른다. 무증상이거나 경증인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생활치료센터도 더 늘려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중증 환자가 치료받을 병상을 미리 비워둬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가 지정한 수도권의 생활치료센터는 경기도 안산에 1곳 뿐이다. 200명 정원인 이곳에는 현재 6명만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남산의 생활치료센터에는 100실 가운데 56실이 남아있다. 15~16일 이틀동안 서울과 경기에서만 국내 발생 신규 확진자가 376명 나온 상황을 감안하면, 빈 자리가 넉넉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중수본은 이날부터 지자체와 함께 운영하는 통합환자분류반을 통해 여유 병상을 배정하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일주일새 확진자가 2천~3천명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수도권의 병원 음압중환자실, 생활치료센터 등을 신속히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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