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망가져버린 부동산 정책,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등 과정의 공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에 맞서, 저희는 의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청년들로서 모든 청년들과 함께 연대하려고 합니다.”(박지현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전공의·전임의들의 집단휴진이 ‘반정부 투쟁’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의료계 현안을 넘어서 부동산 정책 등까지 거론하며 싸움의 전선을 넓히고 나선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문제나 공공의대 입학생 추천권 논란 등으로 불거진 ‘공정성’ 논란을 앞세우며 정치쟁점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집단휴진이 열흘을 훌쩍 넘기면서 의료 공백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강경 투쟁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공의와 전임의, 의대생 등이 소속된 3개 단체는 1일 ‘젊은 의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등의 정책 추진을 철회하고 ‘원점 재논의’ 하겠다는 약속을 합의문에 명문화할 때까지 집단행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지성 비대위 대변인은 “정부가 저희와 충분한 대화를 하고 ‘원점 재논의’라는 합의문을 제시해준다면 언제든지 파업을 종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정부 제안에 대해서는 “명문화하지 않아서 믿지 못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연일 국무총리와 국회, 의료계 원로까지 나서서 협상 또는 중재를 했지만, 의사 집단의 구심력은 점점 더 강해지는 분위기다. 전임의에 이어 최근엔 의대 교수들까지 ‘진료 거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의사’들은 “대한민국 정책을 염려하는 많은 청년단체들과도 소통하겠다”며 여론전에 나섰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인용하며 지지를 호소한다거나 정부가 약속할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는 등 정부에 대항하는 정치파업적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각종 설문조사 등에서 나타난 국민 여론은 ‘의대 정원 확대’ 찬성 쪽에 기울고 있지만, 이날 비대위는 ‘공권력 탄압’ ‘폭압’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격앙된 발언을 쏟아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사들에게는 진료 거부라는 물리력과 조직된 힘이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국민 여론은 조직화되지 않은 상태”라며 “이 때문에 ‘젊은 의사’들은 정부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도 한발 물러서며 ‘달래기’에 나섰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금 10명의 전공의가 고발돼 있는데 정부는 단 한명의 의료인도 처벌받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며 대화 의지를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 미이행으로 고발한 10명의 전공의·전임의 중 현장조사 뒤 근무가 확인된 4명에 대해 고발 조처를 취하한다고 이날 밝혔다. 하지만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고발 등의) 잘못을 철회한다고 해서 (병원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맞섰다. 이날 진료를 하지 않은 전공의는 77.8%, 전임의는 30%로 집계됐다.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가 길어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의사들을 비판하는 청원글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의료를 위해 4천명이 아니라 4만명 의사 인력 증원을 청원한다’는 글에는 13만명이 넘게 동의했고, 한 청원인은 “심장이 멎어가던 아빠가 네 군데의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의료진과 장비가 이미 부족해진 상황에서 의료파업(집단휴진) 강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썼다. 이날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역대 최고 수준인 104명까지 늘어남에 따라, 집단휴진의 영향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도 미치고 있다. 중환자 병상을 운영하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의료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젊은 의사 비대위’는 이날 “하루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집단 진료거부로 인해 수술이 미뤄지는 등 피해를 보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사과는 이날 발표된 회견문이나 발언 가운데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한편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등 92개 단체로 구성된 ‘주치의 제도 도입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떠나 진료 거부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며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고 정부와 국회, 의료계, 시민사회가 보건의료체계 전반적인 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적 타협기구를 꾸려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김민제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