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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백신 늑장 확보 불안 커지는데…“늦어도 된다”는 정부

등록 2020-12-23 20:29수정 2020-12-24 11:47

충분한 물량 조기확보 못한 정부
안전성 내세우며 책임회피 급급
전문가 “도입은 우선 공격적으로
안전성은 접종 시점 부각할 문제”
22일(현지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바이러스 연구소 관계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첫 물량을 화물차에서 내리고 있다. 베오그라드 로이터=연합뉴스
22일(현지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바이러스 연구소 관계자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 첫 물량을 화물차에서 내리고 있다. 베오그라드 로이터=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백신 확보를 위한 협상을 서두르지 않았고, 이로 인해 충분한 백신 물량의 국내 도입 시점이 불분명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급기야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책임을 묻는 정쟁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백신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며 적극적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백신 안전성은 도입 시점이 아니라 접종 시점에서 부각되어야 할 문제라며, 정부가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23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전략기획반장은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백신은 개발 과정이 상당히 단축돼 안전성 (검증)이 중요하다.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백신 국내 도입 시점을 두고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접종은 다소 늦어도 된다’는 ‘동문서답’을 꺼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앞서 백신 공동구매 국제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와 국외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 얀센을 통해 4400만명분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 2~3월로 국내 도입 시점이 특정되고 구매 계약을 마친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뿐이다. 정부는 화이자, 얀센과는 이달 중, 모더나와는 내년 1월 중 실제 계약을 매듭지을 예정인데, 도입 시점에 대해선 개별 제약사와 비밀유지 조항 등으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 1천만명분 가운데 2~3월 공급되는 것은 75만명분에 그친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입을 닫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과 한국의 상황이 달랐다는 점만 재차 강조하며 논란을 비켜가는 모양새다. 손 반장은 “미국 등 국가들에서는 사실상 백신 외에 채택할 수 있는 방역전략이 별로 없는 상황이어서 백신에 거의 전력투구를 해왔다”며 “이런 국가를 저희가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다소 부적절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지금은 3차 유행의 정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안전성 확인’만 강조해서는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현재까지 국외 접종 과정에서 백신 접종을 중단할 만큼 심각한 부작용 사례는 보고된 것이 없다”며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성은 물론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는 도입 시점이 아닌 접종 시점을 가르는 문제로, 도입은 공격적으로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 정부를 비판하는 쪽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정부·여당에선 다른 제약사 백신의 안전성을 문제 삼는 듯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며 “백신 정쟁이 안전성 신뢰 저하로 이어지게 되면 특정 백신에 대한 기피 현상이 생기고 결과적으로 어렵게 구한 백신마저 다 못 쓰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대응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서, 향후 백신 도입 계획을 더 공격적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개발 중인 백신을 과감하게 선구매할 수 있는 정부 내 의사결정 구조나 법·제도적 장치, 예산 확보 권한 등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갖춰야 앞으로의 백신 도입 협상이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하얀 선담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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