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벗] 19살에 한겨레 만난 이은주씨 명맥이으며 발전하는 신문되길 “신문보다 모바일로 기사 읽지만 구독 끊으면 복도엔 보수신문뿐”
이은주(51·사진)씨는 대학 새내기였던 1988년 5월15일,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 가판대에서 한겨레 창간호를 샀던 순간을 떠올렸다. “한겨레신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대학 동아리 선배들이 드디어 제대로 된 신문이 나온다고 했었거든요. 87년 당시 저는 고3이라 사회 변화의 주체가 아니었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역사와 사회에 대해 눈을 뜨게 됐어요. 그때 다행히 한겨레를 만나 신문이 전해주는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죠. 그게 저한테는 엄청 큰 영향을 줬어요.” 한겨레와의 첫 만남은 33년 동안 한겨레신문·한겨레21 정기구독, 그리고 후원으로 이어졌다.
취업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도 신문 구독이었다. “학생 때는 가판에서 신문을 사 봤어요. 그러다 입사를 하자마자 제 이름으로 정기구독을 시작했죠.” 은행에서 근무하던 이씨는 그 지점에서 한겨레를 받아 보는 유일한 직원이었다. “거기선 대부분 조선·중앙·동아나 경제신문을 봤죠. 한겨레가 들어오던 날, 담당 직원이 ‘이건 뭐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신청해서 보는 거라고 당당히 말했던 기억이 나요.”
이씨는 자신의 견해와 다른 보도가 나올 때 신문을 멀리하는 대신 한번 더 생각해본다고 했다. “한겨레가 제 마음과는 다르게 냉정하고 비정하게 보도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워도 다시 한번’, 한겨레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한겨레는 다른 매체와 달라요. 한겨레만의 본능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있어요. 전 그걸 믿고 지지해요.” 이씨는 기억에 남는 보도로 디지털 성착취 문제를 공론화한 ‘엔(n)번방 사건’을 꼽았다.
그는 “초심을 잊지 말라”는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지금 한겨레 기자분들이 초창기 기자분들과 조금 다른 결이라고 생각은 해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요. 그렇지만 그분들의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명맥을 이으며 발전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다른 독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한겨레를 멀리할수록 더 애정이 생긴다고 했다. “한겨레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의 논리에 의해 기사가 생산되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매체가 많이 없거든요. 한겨레가 있어야 우리 아이에게도 정의에 대해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가해 사실을 보도하고 반성하는 건 한겨레만 할 수 있거든요.”
종이신문을 구독하지만 이씨도 주로 모바일을 통해 기사를 접한다. 그래도 신문을 끊을 생각은 없다. “남편이 언제까지 신문을 받아 볼 거냐고 이야기해요. 저희 앞집이 보수신문을 구독하는데 새벽에 나가 보면 두 신문이 나란히 복도에 있어요. 제가 신문을 끊으면 보수신문만 놓여 있을 거잖아요? 그 모습을 보긴 싫어요. 그래서 더 끊을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한겨레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벗’이죠. 19살에 한겨레를 만났고 지금까지 한겨레와 함께 있고 앞으로도 함께할 거니까요. 제 아이에게도 한겨레가 벗이 되길 바랍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