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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배달 콜 골라받다 계정 차단…“어쩌겠어요, 주는 대로 받아야지”

등록 2021-11-08 04:59수정 2021-11-08 12:41

쿠팡·배민의 채찍과 당근…수락률·완료율 기사별로 관리해
평점 낮으면 ‘불이익’ 주고 목표 채우면 게임하듯 ‘보상금’
대법 ‘노동자성 기준’ 사례…프랑스 등서도 노동자로 인정
지난 1일 낮 서울 마포구의 한 인도에 세워진 오토바이 너머로 한 배달기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1일 낮 서울 마포구의 한 인도에 세워진 오토바이 너머로 한 배달기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쿠팡이츠의 ‘배달 파트너’ 김정민(가명)은 ‘(호출을) 주는 대로 다 타다’가 의도치 않게 장거리를 뛰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배정되는 대로 거부 없이 수행하다가 서울 강동구에서 출발해 경기 과천시에서 배달을 끝낸 것이다. ‘자영업자’인 배달기사는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배차 거절로 수락률이 떨어지면 배차가 안 되기 때문에 수락률의 인질이 된다”며 “자율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결국 일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했다.

자율적으로 일하려던 쿠팡이츠의 또 다른 배달기사 이종수(가명)는 지난 9월 말 7일 동안 쿠팡이츠 앱 ‘계정 정지’ 조처를 당해 배달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주로 배달을 다니는 일터는 서울 종로와 중구 일대다. 중구는 배달 단가가 높고 종로는 낮아서 종로 쪽 배달 호출을 거부했는데, 그 다음날 계정이 정지됐다. 쿠팡이츠가 이종수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 사유는 ‘과도한 거절, 배정 후 취소, 무시로 인해 고객과 상점의 경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락률 하락 때문인 것 같아서, 앱을 켠 뒤부터는 가급적 배정된 호출을 다 수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주는 대로 다 타야죠, 뭐 어쩌겠어요.”

감시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한 지역배달대행업체가 배달기사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주는 실태가 심각하지만, 대형 플랫폼 업체에서 일한다고 해서 상황이 그리 나은 건 아니다. 코로나19에 따라 특히 음식배달 수요가 폭증하고 소비자들이 배달된 음식의 질에 민감해졌다. 쿠팡이츠에 이어 배달의민족도 배민커넥트·배민라이더스(이하 배민) 배달기사가 고객의 주문 1건만 받아 음식을 배달하는 ‘단건 배달’에 뛰어들면서 음식배달 플랫폼들은 배달기사 확보에 사활을 걸게 됐다. 배달기사가 더 많이 필요한 만큼 두 회사는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지정 배차’를 운영하면서 배차 수락률이 높으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수락률이 낮으면 배차 지연이나 제한을 거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되레 배달기사들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지휘·감독’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계약 조건 변경 불가와 평점 관리라는 ‘채찍’

배달기사들이 쿠팡이츠와 배민 앱을 통해 호출을 수락하면, 가게 도착과 음식 수령 완료, 고객 전달 완료로 이어지는 세번의 절차를 모두 보고해야 한다. 단건 배달을 할 때 배달기사의 위치는 업체에 의해 실시간으로 관제되고, 고객도 위치를 볼 수 있다. 모든 과정은 매뉴얼화되어 있고, 매뉴얼을 어기면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

배달기사가 자영업자라면, 최소한 배차가 이뤄지는 기준이나 배달료가 결정되는 기준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한다. 배민커넥트는 약관에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배차중개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적어뒀을 뿐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쿠팡이츠도 “매장 위치와 고객 위치 및 배달기사의 위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희망지역 선택은 배정과 관련이 없다”는 수준으로만 배차 기준을 밝혀뒀다. 배달료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배달기사는 플랫폼 업체와 ‘동등한 위치에서’ 배송업무 위탁 계약을 맺고 일하지만, 계약 조건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배달기사가 스스로 호출을 선택하는 ‘경쟁배차’에 여러건을 한번에 배달하는 ‘묶음 배송’이라면 그나마 배달기사가 배달 장소 몇곳을 두고 최적의 경로를 짜 자율적인 계산에 따른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단건 배달과 지정 배차는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두 회사 모두 지정 배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달기사가 거절할 수 있지만 불이익이 예정돼 있다. 두 회사 모두 ‘배차 수락률’과 ‘배달 완료율’을 기사별로 관리한다. 특히 쿠팡이츠는 이 두 지표와 고객의 평가,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 배달 수행 비율 등을 합쳐 평점을 매겨 관리한다. 그러면서 ‘배정된 주문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평점이 하락할 수 있다’, ‘수락 후 취소 때 배달 완료율이 하락하고, 반복적인 취소 때 업무 위탁이 제한될 수 있다’고 약관 등에 밝힌다. 배민커넥트 역시 ‘거절 건이 많아지는 경우, 배차 소요시간이 늘어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라고 밝힌다. 구체적인 기준도 없는 이런 ‘안내’는 배달기사들의 자율성을 옥죄는 족쇄다.

 프로모션과 인센티브라는 ‘당근’

두 회사가 ‘채찍’만 휘두르는 건 아니다. 배달기사를 확보하기 위해 배달료 단가를 높이고, 배차 수락률과 배달 완료율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는 프로모션·이벤트 등을 제공한다. 마치 게임처럼 목표를 달성하면 ‘리워드’(보상)를 지급한다. 쿠팡이츠는 배달기사들을 5등급으로 나누어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면 한달에 한번씩 돈을 지급하는데, 최고 등급을 받으려면 한달에 배달 700건을 해야 한다. “순수하게 도로 위에 있는 시간만 하루 10시간을 넘겨야 하고, 남들이 안 가려는 배달지를 다 감수하며 주는 콜 다 받아야 이 정도 등급이 될 수 있어요.” 김정민의 말이다. “배민에서는 수락률 목표를 정해주고, 달성하면 돈을 주는 이벤트를 자주 해요. 그 돈을 받으려고 앱에 노출되는 직선거리로는 1.5㎞지만, 실제로는 3㎞가 넘는 호출을 수행했는데, 그때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하게 됐어요.” 배민 배달기사 정주훈(가명)의 말이다.

 ‘채찍’과 ‘당근’이 지닌 법적 의미

그런데 두 회사의 이런 조처들은 법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우선 ‘채찍’은 대법원이 노동자성 판단의 중요 기준으로 삼는 ‘상당한 지휘·감독’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대법원은 ‘자영업자’인 케이티(KT)스카이라이프 인터넷 설치기사가 피디에이(PDA)를 통해 업무 지시를 받고 수행 과정을 보고했다는 점을 들어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프랑스 대법원도 우버 기사에 대해 “회사는 호출을 세번 거부하면 운전자의 앱 접속 권한을 일시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호출 취소율이 높거나 문제 행동 보고가 있을 경우 계정 접근 권한을 박탈할 수 있었다”며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당근’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독일연방노동법원은 ‘롬러’라는 플랫폼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 진열된 상품이 잘 배치돼 있는지 등을 확인해 보고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법원은 “플랫폼에서 규칙적으로 활동하면 등급이 상승하고 보수가 늘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 시스템’이 플랫폼 노동자가 플랫폼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했으므로 노동자와 비슷하게 지시·구속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노동자성을 지닌다는 얘기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정의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 돼 있는 만큼, 일하는 사람이 그 ‘사업’에 얼마나 통합돼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법원은 사용자의 지시·명령이 있었는지를 노동자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지시와 명령은 사업이라는 구조가 드러내는 그림자에 불과하다”며 “사업에 통합돼 노무를 제공한 사람이라면 노동자로 판단하고, 노동법의 보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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