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당시 한 노동자가 탄을 치우기 위해 좁은 틈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김용균씨의 죽음 이후 낙탄 제거 작업에는 무인 낙탄 회수 설비와 물 세척 장비가 도입되는 등 일부 시설이 개선됐다. 태안화력 시민대책위 제공
지난 4월 경상남도 밀양의 금속제품 열처리 기업 ‘삼흥열처리’ 공장 내부엔 시시티브이(CCTV) 다섯대가 새로 설치됐다. 이 회사 직원들은 열처리 후공정에 쓰이는 기계 ‘숏블라스트’의 잔여물 확인을 위해 1.5m 높이 기계를 하루에도 스무번씩 오르내려야 해 추락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을 둘러보던 대표이사는 “기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내부를 확인할 수 있게 보안카메라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8월에는 지게차와 노동자가 뒤섞여 일하는 작업장에서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선도 그었다.
경남 밀양의 금속제품 열처리 기업 ‘삼흥열처리’는 지게차와 작업자의 충돌을 막기 위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그었다. 삼흥열처리 제공
오는 1월27일 50인 이상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자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 등 책임을 묻는 법이다. 법 통과 이후 일부 언론은 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을 이유로 ‘법 내용이 모호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 대표를 감옥에 보내는 법’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많은 기업이 이 법의 목적인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경기 평택의 한 제조업체는 두달 전부터 주 1회 노동조합 간부와 안전관리자 등이 현장을 돌며 작업자들에게 안전위험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안전 업무 관련 조직과 예산을 확대·개편하고 신규 인력도 두명을 더 뽑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그냥 넘어갔던 위험 요인도 지금은 (예방)조처를 하고, 신입사원에게도 8시간 안전교육을 마친 뒤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며 “회장님 큰일(수사) 치르게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산재 사망 사고가 잦아 올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기업들도 시스템 개선에 한창이다. 근로감독에서 매년 안전 예산이 감액된다는 점을 지적받은 대우건설은 최근 최고경영자 직속 조직인 품질안전실을 ‘안전혁신본부’로 격상하고 담당 인원도 45명에서 52명으로 늘렸다. 현대건설도 ‘안전보건관리자가 계약직인데다 타 부서 전출이 잦아 업무에 책임감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은 뒤 안전보건관리자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신입사원도 새로 채용했다.
경남 밀양 금속제품 열처리 기업 ‘삼흥열처리’는 추락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숏블라스트 기계에 시시티브이(CCTV)를 설치했다. 예전엔 1.5m 기계 위로 올라가야 했지만, 이제는 화면을 통해 내부 잔여물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숏블라스트를 비추는 시시티브이 화면. 삼흥열처리 제공
1인 대표이사 체제를 최고경영책임자와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2인 대표이사 체제로 바꾸는 안을 검토 중인 기업들도 눈에 띈다. 정지원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은 “규모가 큰 사업장은 대표가 현실적으로 혼자 안전을 다 챙길 순 없다. 안전에 전문성이 있는 최고안전책임자를 추가로 선임해 두 사람이 안전을 나눠 챙기는 형태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영세기업들도 그동안 부실하게 운영하던 안전 관련 내부 지침을 법에 맞춰 보완하고 있다. 박성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매출액이 연간 200억원 수준인 지역 양말 공장이나 내복 공장도 50명 이상 사업장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이런 기업들은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 평가 체계를 만들거나, 회사가 세운 안전 보건 목표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의무를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을 마무리할 수 있게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영세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업종별 안내자료가 필요하다”며 “노동부가 발간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동부가 현재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만든 ‘안전보건관리체계 자율점검표’는 창고 및 운수업과 폐기물처리업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된 상황이다.
안전을 강화하는 조처 대부분이 비용을 수반하다 보니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법 시행 준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안전·보건 관리를 외주화하는 중소기업들이 많은데, 가급적 전담 관리자를 두라고 조언하고 있다. 전담 인력을 뽑는 비용 지원도 정부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도 협력업체 종사자에 대해 안전보건 의무를 지기 때문에 협력업체 안전 강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장기적으로 산업 현장의 사고 발생률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법 시행 초기에는 단순히 형사처벌을 피하려는 시도로 안전을 강화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점차 정착되면 사업주 스스로 위험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경험이 쌓일 거라고 본다”며 “다만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안전보건 전문가에게 자문도 하고, 또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된다면 더 내실 있는 방향으로 사고 위험이 감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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