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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김용균 사망’ 원청 책임 있지만, 산안법 위반 아니라는 법원

등록 2022-02-10 22:34수정 2022-02-11 02:36

1심 법원, 4년 만에 선고
서부발전 대표 밴 13명 유죄
단독작업 방치한 책임 물어

원청 업무상 과실 인정하고도
안전조치의무 산안법은 불인정
유적 대리인 “판단 회피” 반발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 도중 숨진 한국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임직원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운데) 등이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 도중 숨진 한국서부발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임직원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고인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운데) 등이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이하 김용균)를 숨지게 한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하청 한국발전기술 법인과 임직원들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김용균의 사망책임을 김용균에게 돌렸지만, 법원은 2인1조 지침을 어기고 하청 노동자에게 단독작업을 시킨 원하청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원청 대표이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된 이번 사건 자체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는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을 하던 김용균을 숨지게 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된 서부발전·발전기술 임직원 14명 가운데 김병숙 당시 서부발전 대표이사를 제외한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상대적으로 하급자인 원하청 직원 2명에게 벌금 700만원이 선고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서부발전 법인에겐 벌금 1천만원, 한국발전기술 법인은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됐다.

법원이 인정한 김용균 사망의 원인은 컨베이어벨트가 가동하던 중에 이뤄진 단독 작업이었다. 지침에 적힌 ‘2인1조’가 아닌 단독작업을 방치한 원하청 모두의 책임(업무상 과실치사)을 물었다. 박 판사는 원하청 임직원들이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고려한 방호조치를 갖추지 않고, 노동자가 2인1조로 컨베이어벨트 점검작업 등을 하게 해야 하는데도, 피해자(김용균)가 단독으로 점검작업을 수행하게 했으며, 점검작업 등을 할 때 컨베이어벨트의 운전을 정지시키지 않는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특히 원청 임직원들은 “설비 소유자로서 하청 노동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설비를 관리하고 업무지침을 감독”해야 하는 의무를, 하청 임직원들은 “상급자·관리감독 책임자로서 서부발전에 설비 개선 또는 인력증원을 요청”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과정에서 “김용균에게 위험하게 일하라고 한 적이 없다” “어쩌다 숨졌는지 모르겠다”던 원하청 임직원들의 발언은 양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판사는 “공판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거나 피해자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까지 주장했는데, 외동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들이 받았을 정신적인 고통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원청 관리자들이 ‘설비 관리와 업무지침 감독’에 대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김용균이 숨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산안법의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해 숨졌다고 보지는 않았다. 산안법은 사업주에게 위험한 기계를 다룰 때 위험 예방 조치와 기계에 대한 방호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겨 노동자가 숨지면 가중처벌한다. 하지만 박 판사는 김용균을 비롯한 하청노동자와 서부발전의 관계를 “실질적인 고용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김용균의 ‘사업주’가 서부발전이 아니라 무죄라는 뜻이지만, ‘주의 의무’(업무상 과실치사)는 있지만 ‘안전조치 의무’(산안법)는 없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원청 사업주인 김병숙 당시 대표이사도 “취임 후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이나 한국발전기술과의 위탁용역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김 대표이사는 2018년 3월에 취임했고 사고가 난 것은 12월이었는데, 그 기간동안 ‘위험성과 문제점을 몰랐다’고 주장한 것이 무죄를 받게 된 근거가 됐다.

김용균의 유족을 대리한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법률원)는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의 대상이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 한정된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법원이 이에 대한 판단을 회피했다”며 “노동자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는데도 너무 낮은 형이 나온, 원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원인과 구조를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원청 대표이사의 무죄와 원청 임직원들의 산안법 위반 무죄 선고는 김용균이 숨진 이후 제정 요구가 빗발쳤던 중대재해 처벌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종사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경영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는 “산안법은 개별·구체적인 의무 위반을 처벌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갖출 의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알고 개선·유지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고, 이를 위반했을 때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여지가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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