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캠페인 기간인 지난해 12월2일 오후 서울시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열린 스타트업 정책 토크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일 이후에 맘껏 쉴 수 있어야 한다”(
▶관련기사: 법치주의자 윤석열의 빗나간 ‘주 52시간제’ 공격)고 ‘주 52시간 노동상한제’를 비판하며, 노동시간 유연화를 ‘노동개혁’의 첫번째 공약으로 삼았다. 연구개발 업무 등에서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렵다’고 주장한 기업들의 요구가 밑바탕이 됐다. 그러나 “연구개발 직군에 장시간 집중근로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선입관”이라는 고용노동부의 연구용역이 나왔다. 또한 현행 유연근로제 도입과 활용에 어려움이 없다고 밝힌 기업이 7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새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공약 이행에 참고할 대목으로 보인다.
노동부 연구용역으로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수행한 ‘연구개발 분야 유연근로제 사례연구’는 유연근로제를 도입한 기업 가운데 연구개발기업 6곳, 연구개발부서가 있는 기업 231곳, 공공부문 연구기관 57곳 등 29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보고서를 보면, 해당 사업장들은 시차출퇴근제(62.2%), 선택적 근로시간제(46.6%), 탄력적 근로시간제(41.5%), 재택(원격)근무제(40.8%), 보상휴가제(35.4%), 사업장 밖 간주근로시간제(20.7%), 재량근로제(10.5%) 등 한 사업장에서 다양한 유연근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근무가 발생한다고 밝힌 122곳 가운데, 초과근무가 일상적이라고 답한 곳은 18.9%,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특정시기 또는 주문량이 증가하면 통상적으로 초과근무가 발생한다고 답한 곳은 38.5%이었다. 초과근무가 ‘통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구개발 노동자들의 평균 초과근로시간은 주 3.1시간으로 나타났다. 초과근무시간이 0시간이라고 밝힌 곳(33.0%)과 재량근로제를 도입했거나, 노동시간 관리를 하지 않고 있어 알 수 없다고 답한 곳(25.5%)도 포함됐다.
그러나 연구개발 직군에 장시간 집중근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전반기(주 평균 5.2시간)보다 후반기(6.0시간)에 초과근무가 더 많이 발생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 또 프로젝트 후반기에 초과근로시간이 길게 나타난다고 응답한 곳은 30곳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선입관과 달리, 집중적인 초과근로 필요성이 연구개발분야의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라며, 그 이유를 “이미 일·생활 균형을 염두에 둔 근로시간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업이 인지하고 있고, 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은 물론 초과근로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중장년 직원들도 이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적었다.
조사대상 사업장의 대다수는 주 52시간제 시행과 맞물려 유연근로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것은 ‘근로시간 운용의 유연성 확보’(48.6%)였고, ‘일-가정 균형 등에 대한 노동자의 요청에 부응’(39.1%)이 두번째로 많았다. 보고서는 유연근로제 도입의 효과로 ‘법정노동시간 준수’(5점 만점에 3.58점), ‘노동자의 몰입도·만족도 향상’(3.65점)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노동시간 상한제를 지키기 위해 시작했지만 노동자의 몰입도 및 만족도 향상과 함께 업무생산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현행 유연근로제를 도입하거나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2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당선자가 유연근로제가 경직돼 있다는 이유로,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릴 것을 공약한 것과는 다소 상반되는 결론이다. 어려움이 있다고 답한 사업장들은 근태관리의 어려움, 업무 특성에 따라 활용하기 어려움, 제도 활용도가 낮음 등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윤 당선자의 주장처럼 사업장에 따라 노사 자율로 노동시간과 일하는 방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에는 동의했다. 연구책임자인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노동시간 상한 준수와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 보장 등 노동자 건강권 보장과 유연근로제 도입을 위한 근로자대표의 실질적인 권한 보장을 전제로, 노동법의 노동시간 규범을 일-가정·일-학습 병행이 가능한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동부 역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단기간 내 급격한 근로시간 개편은 건강권 침해 논란과 비판 여론, 노동계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면서도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도 노사 합의에 따른 자율성 확대, 근로자 선택권 강화 측면에서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연근무제의 종류>
탄력근로제: 일이 많은 주(일)의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적은 주(일)의 근로시간을 줄여 정산기간(최장 6개월) 평균 주 40시간(12시간 연장 가능)을 넘지 않도록 하는 제도.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최장 3개월)의 총 근로시간 범위 안에서 업무의 시작·종료시간과 1일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평균 주 40시간(12시간 연장 가능)을 넘지 않도록 하는 제도.
재량근로제: 업무수행 방법과 시간배분을 노동자 재량에 맡길 필요가 있는 업무(연구개발, 디자인 등)에 대해, 노사합의로 정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
간주근로제: 업무시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수행해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노사합의로 정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
보상휴가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의 일부 또는 전부를 휴가로 보상받는 제도.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