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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경총 ‘개정 요구’, 정부 ‘손질 예고’…중대재해법 어디로 가나

등록 2022-05-17 14:59수정 2022-05-17 15:11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노리는 경총의 속내는?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법사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잠정합의안 관련 국회 농성단 긴급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고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씨가 발언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단식농성장에서 열린 법사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잠정합의안 관련 국회 농성단 긴급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고 이한빛 PD의 부친 이용관씨가 발언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경영책임자에게 중대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지운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27일부터 시행된 가운데, 경영자가 해야 할 각종 안전 확보 의무를 제한하자는 경영자단체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최근 윤석열 정부에 제출한 6가지 중대재해법 개정 요구 건의서를 살펴보면, 경총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의무를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의무로 갈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시행령에 신설해 달라고 요구했다. 중대재해법이 새로 제정된 건 산안법의 경우 안전관리자가 지켜야 할 현장 안전수칙 위주로 정리돼 있어 인력, 예산 등 안전과 직결되는 경영상 결정을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총의 요구는 중대재해법을 다시 산안법의 ‘동어반복’ 수준으로 제한하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경총은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경영자 처벌 위험이 커진다며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새 정부 역시 이를 받아들여 중대재해법 ‘손질’을 예고한 터다.

재해예방 ‘예산편성 의무→이사회 승인’ 축소 요구

경총이 작성한 건의서 내용을 보면 중대재해법의 효력을 시행령을 통해 제한하려는 요구가 명확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을 편성하라’는 의무를 지웠는데, 이는 2인1조로 일했어야 할 현장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구의역 김군 사고처럼 기업이 비용을 줄이려고 인원과 예산을 지나치게 적게 잡는 관행을 처벌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수사당국이 이 조항에 근거해 경영상 결정을 되짚어 보면서 재해를 막는 데 필요한 적정 인원과 예산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따져볼 수 있다.

그러나 경총은 이를 ‘회사의 안전·보건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 받으라’는 산안법상 의무로 갈음하는 조항을 시행령에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영 성과를 우선시하는 이사회가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운데다, 단순한 보고 의무로 갈음되면 사업주가 인력이 부족한 부서를 살피고 인원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등의 조처를 기대하기 어렵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적정한 예산을 짠다는 건 현장의 위험 요인을 파악한 위험성평가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인데, 개별 이사회 판단만으로 그 의무를 다 했다고 보는 것은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발방지책 의무도 ‘재해 발생→중대재해 발생시’ 요구

경총은 또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경영책임자의 의무도 ‘중대산업재해 발생 시’로 한정하자고 제안했다. 중대재해법상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2명 이상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1년 내 3명 이상이 직업성 질병 발생으로, 전체 산업재해의 극히 일부에 그친다. 만약 재발방지책을 이런 사고에 한해서만 세운다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기 이전 수많은 현장의 ‘아차’ 사고 및 경미한 사고가 제대로 분석되지 않고 누락될 수 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는 “사업주가 스스로 위험 요인을 찾고 재발을 방지하도록 체계를 만드는 게 중대재해법의 핵심 요구인데 특정 사고만 골라서 대응하겠다는 건 이른바 ‘사후 대응’만 하겠다는 취지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대·발주 땐 원청 안전확보 의무 제외 요구

이밖에 하청 노동자 안전을 확보할 의무가 있는 원청 사용자 범위에서 ‘임대’와 ‘발주’를 제외하자는 요구 역시 이미 법을 피해가려는 꼼수임이 확인된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하청 노동자 감전 사고가 발생한 한국전력공사가 ‘우리는 원청이 아닌 발주자’라는 논리를 제시하며 책임 회피를 시도했는데, 이런 시도를 아예 합법화하자고 경총이 제안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 2020년 도급인임을 부정하는 한전의 주장을 기각하고 하청 노동자 산재 사고에 도급인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봐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경총 요구 본질은 ‘경영자 면책’

결국 경총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면 사업주가 현장의 고유한 위험요인을 스스로 찾고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중대재해법의 기능이 크게 제한된다. 중대재해법이 ‘적정한 예산 편성’과 같이 포괄적인 문구로 제정된 까닭은 작업장 통로와 밝기 수준까지 촘촘히 제시한 산안법이 재해 감축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되레 그 ‘할 일’만 하면 끝이라는 면죄부를 줬기 때문이다. 법에 적힌 목록만 좇아서는 제각기 다른 현장의 위험을 개선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 중대재해법이다. 경영자단체인 경총은 과거처럼 처벌을 피할 명백한 ‘정답’이 없으니, 법의 모호성을 강조해 최대한 구체성을 확보하려 시도하는 것이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런 시도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사업주가) 중대재해법과 시행령의 의무가 무슨 말인지 알아보려 노력하다 보면 산안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조치가 무엇이고 그 조치를 이행하는 데 법인이 충분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는지, 어느 부분이 구체적으로 미비한지 확인할 수 있다”며 “이는 사고를 줄이는 첫걸음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영책임자 의무가 불명확하다’는 주장이 과연 구체화의 노력을 거치고도 잘 모르겠다는 하소연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적극적인 실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들의 원론적인 거부인지는 (그들이) 재해 방지를 위한 실질적 대책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느냐 여부로 판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총은 시행령 개정 요구에 그치지 않고 ‘경영책임자 면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법 개정 사안이다. 경총은 건의서에 “1년 이상 징역형 규정 삭제, 경제벌 부과방식 전환 등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하지만 개정에 일정 부분 시일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시행령 개정을 우선적으로 건의한다”며 안전이사(CSO) 등을 선임하면 사업 대표는 면책하는 조항을 신설해 달라는 요구를 함께 담았다.

민주노총은 전날 성명을 내어 “결국 경영자단체가 원하는 것은 대표이사를 처벌에서 빠져나가게 해 달라는 것임이 건의서를 통해 명확해졌다”며 “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각종 내용을 시행령으로 제정해 중대산업재해의 범위와 처벌 적용 대상을 극단적으로 줄여달라고 요구하는 경총 및 사업주 단체는 법을 뛰어넘는 집단이냐”고 비판했다.

박미진 원진재단 부설 노동 환경건강연구소 안전보건정책실장은 “중대재해법 제정에 서명한 10만 시민들은 산안법의 한계와 경영 책임자의 책임 이행에 대한 불신, 산안법을 집행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중처법 개정을 요구하더라도 시민들이 납득될 수 있는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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