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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국토부·노동부, 정권 눈치 보느라 화물파업 수습 뒷전

등록 2022-06-09 16:59수정 2022-06-14 17:45

국토부, 2018년 ‘안전운임제’ 국회 설득
정권 바뀌자 “국회가 논의할 사항” 뒷짐
노동부 “주무 부처 아냐”…장관은 출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 사흘째인 9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도로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트럭을 동원해 물류 이송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 사흘째인 9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도로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트럭을 동원해 물류 이송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사흘째로 접어든 9일,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야당이 마련한 화물연대와의 간담회도 불참하는 등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회에서 안전운임제 필요성을 역설했던 국토부의 태도가 돌변하자, 제도에 반대해온 국민의힘 정권이 출범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9일 오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연대 쪽과) 대화가 끊어진 적이 없고, 어제도 오늘도 의미있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국토부의 이런 태도를 두고 “오늘 열린 더불어민주당 간담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한 게 ‘대화’의 전부이고, 여기에 참석하지 않아 놓고선 ‘대화를 하고 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핵심 요구인 안전운임제 존속 여부에 대해서도 “국회 논의사항”이라며 공을 떠넘기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운송 비용을 고려해 적정한 운임을 결정하는 제도로 올해 말 폐지를 앞두고 있는데, 국토부는 ‘일몰제 폐지는 법 개정 사항이니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 때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해 국회를 설득했던 때와 180도 다른 태도다.

2018년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김유인 당시 국토부 물류산업과장은 “화물차는 부족하고 물동량은 늘었음에도 운임은 하락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 몇개 품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안전운임제를 시행하려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렬 당시 교통물류실장도 “국가가 현재 상태를 방치하면 파업으로 인한 국가 전체 손실이 엄청나게 생기기 때문에 시장경제가 정상궤도로 회귀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물노동자 생존권 보호를 위한 간담회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화물노동자 생존권 보호를 위한 간담회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이봉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지난 8일 “화물차주는 찬성하지만, 화주들은 물류비가 늘어 반대한다”며 안전운임제 유지에 대한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화주들의 반대는 2018년 안전운임제 도입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낸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보면, 안전운임제 폐지에 찬성한 화주는 절반에 못미치는 44%였다. 오히려 화주 가운데 33%는 일몰제 폐지, 24%는 일몰제 추가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결국 국토부가 안전운임제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국민의힘’ 정권 출범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2018년 국회 법안 논의 당시 이헌승·박맹우 등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화주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간다’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해친다’ ‘사회주의적 성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며 반대했다. 법안이 최초 발의될 당시만 하더라도 일몰제 규정이 없었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갑자기 일몰제가 끼어들어갔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국토부의 모습은 ‘영혼없는 공무원’의 전형을 보여준다”며 “국토부의 영혼 없음이 화물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고, 물류대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는 아니지만 노동계와 분쟁 조정 역할을 맡아야 할 고용노동부의 방관자적 태도도 입길에 오른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예고돼 있었음에도,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한다며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했다. 노동부 관계자들은 “화물연대는 법내노조가 아니고 노동관계법상 ‘파업’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한다. 다만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화물연대의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이미 여러차례 난 바 있는데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을 비준한 상황을 덧대보면, 노동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 장관은 파업 첫날인 지난 7일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한국 정부는 노사와 긴밀히 소통해 (기본)협약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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