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주40 때론 주60시간, 유연근무 추진’(6월24일 <중앙일보> 1면), ‘일 많을 땐 근무 늘리고, 적을 땐 줄이고…주 52시간제 유연해진다’(6월24일 <한국경제> 1면).
지난 23일 고용노동부가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 한도를 월 단위로 변경하겠다는 내용의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전한 일부 언론 기사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지금은 주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넘겨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도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겠다며 연장근로 관리 단위 변경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도 유연근로시간제(유연근로제)를 통해 최대 6개월까지 업무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배분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대표적인 유연근로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선택근로제) 등이다. 이미 제도가 있음에도 정부는 왜 연장근로 관리를 ‘월’ 단위로 바꾸려는 것일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력근로제는 성수기에 많이 일하고 비수기엔 적게 일할 수 있도록 최대 6개월까지 평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이내로 유지하는 대신 업무량이 많은 특정 주에는 52시간을 넘겨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근무 일정을 미리 짠 뒤 ‘과반수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이하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하면 도입할 수 있다. 선택근로제는 최대 3개월 동안 주 52시간 한도 안에서, 반드시 근무해야 하는 필수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노동자가 근무 시작 및 종료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두 제도는 1997년부터 근로기준법에 존재해왔지만, 2018년 7월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주당 근로시간 한도가 68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법 위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유연근로제 실효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업들은 유연근로제 허용 기간이 짧다며 이를 늘려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됐다, 3개월 이내로 운영되던 탄력근로제는 6개월 미만까지, 선택근로제는 연구·개발 업종에 한해 1개월 이내에서 3개월 이내까지 허용 기간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유연근로제가 경직돼 도입이 쉽지 않다며 ‘연장근로 관리단위 변경’을 추가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15일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러한 내용을 잇따라 건의했고, 노동부는 경영계 요구를 ‘노동시장 개혁 방안’에 포함시켰다. 노동부는 “유연근로제가 보완됐지만 제도 도입의 절차·요건이 쉽지 않아 활용률이 저조하다”고 밝혔다.
월 단위 연장근로 관리가 도입되면, 기업은 유연근로제에 견줘 노동자에게 더 쉽게 연장·휴일근로를 시킬 수 있다. 우선 탄력근로제처럼 근무 일정을 사전에 확정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연장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다. 또 선택근로제처럼 노동자에게 출·퇴근시간 결정을 맡길 필요도 없다. 선택근로제를 폐지하고 연장근로를 월 단위로 관리하면, 회사가 정한 출·퇴근 시간을 그대로 둔 채, 월 52시간 한도 내에서 회사가 원하는 때에 연장·휴일근로를 시킬 수 있다.
특히 현재 근로기준법의 연장근로 동의 주체는 ‘개별노동자’로 돼 있다. 반면, 유연근로제의 경우엔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을 부여하는 까닭은 일정 기간에 노동시간이 몰릴 경우 과로 발생 우려가 있으므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의견을 나눈 뒤 결정하라는 취지다. 연장근로 동의 여부를 지금처럼 개별 노동자에게 맡길 경우, 교섭력이 약해 ‘바짝’ 근로를 강요당할 수 있다. 월 단위 연장근로가 시행되면, 최악의 경우 주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비판에 대해 노동부는 “11시간 연속휴식 등이 병행될 것이며 노사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1시간 연속휴식 보장과 근로자대표와의 합의 등이 포함되면, 제도 도입 요건·절차의 까다로움을 이유로 유연근로제를 활용하지 않던 기업들이 반대할 공산이 크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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