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압도적 우위에 선 정부의 힘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안전운임제 확장을 내걸고 지난 9일까지 16일간 진행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파업 기간 내내,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의 조정과 중재가 아니라 행정명령과 사법 처리라는 채찍만 휘둘렀다. 새해부터 정부가 노동시간 유연화와 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 등 이른바 ‘노동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향후 노정 관계도 정부의 명령과 형식적인 법치가 교섭을 꽁꽁 얼려버리는 추운 겨울이 닥쳐올 것으로 예상했다.
고용노동부 의뢰를 받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노동시간 규제를 유연화하고 임금체계를 성과와 직무 중심으로 바꾸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부가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연구회는 지난 4개월 동안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으며,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과 정책제언을 노동부에 권고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현재 주 12시간으로 돼 있는 연장근로한도 관리 단위를 월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경우 현행 최대 주 52시간인 노동시간이 늘어나게 돼 노동계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임금체계 개편의 경우 윤 대통령이 후보시절 “부서·직무별 동의에 따라 임금체계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 역시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대표 제도를 흔드는 민감한 사한이다. 정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을 바탕으로 국회 입법과 정부 지침 변경,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 등을 신속하게 추진해나갈 전망이다.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인력 감축과 민영화 관련 이슈도 새해부터 노동 현장에서 크게 갈등을 빚게 될 요소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 2차 파업 사태에서 보인 기업 우선, 노조 혐오와 민주노총 배제 정서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노동개편을 시도할 전망이다. 정부가 내년도 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 상황임을 강조하며 ‘노동개혁’ 필요성을 설파하고, 노동계에 ‘노동개혁의 발목잡는 세력’이라는 혐의를 붙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것은 보수 정부의 오래된 레퍼토리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 2차 파업을 통해 극적인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며 노조때리기의 효능감을 확인했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한 직후부터 업무개시 명령에 이은 경찰 수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압박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부쳤다. 이 과정에서 타협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사라졌다. 국토교통부는 화물연대와의 대화 자리에 두 차례 나왔지만 ‘파업 우선 철회’ 빼고는 안전운임제 관련 아무런 타협책을 들고나오지 않았다. 대화는 의미 없이 끝났고, 화물연대는 사실상 백기투항 하듯 9일 파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3%로 3주 연속 상승했고, 긍정 답변을 한 응답자들은 ‘노조 대응’(24%)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정부가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강공책을 펴면서, 노정관계가 얼어붙고 노사관계에도 혹독한 한파가 몰아닥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동개혁 국면에서 정부가 노조를 의도한 대로 무릎 꿇리고 군소리 못 하게 틀어막는 방식으로 밀어붙이면 노동계와 충돌하고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한겨레>에 “정부가 진정 노동시장 이중구조(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하청·중소기업의 노동조건 차별화) 문제 해법을 모색하려면 책임 있는 자를 교섭 테이블에 끌고 나와 판을 까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노동 하층을 어떻게 보호할지는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이번 파업 종료를 법과 원칙 기조의 성공적 수행으로만 평가한다면 그건 시대착오적 인식”이라고 평가했다.
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국제기구, 유럽연합(EU) 등과의 통상 마찰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적잖다. 카렌 커티스 국제노동기구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 등 관계자들은 12일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이 주최하는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해 정부 관계자와도 면담할 예정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회를 형성하는 노조 등 결사체를 인정하고 그들이 역할을 하면서 시장 질서를 만들어가도록 조성을 해주는 게 사회적 비용도 덜 들고 민주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걸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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