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노조활동 부당개입, 노조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회계자료 비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 지원을 끊고 해당 노조에 낸 조합비 세액공제를 해주지 않는 등의 조처에 나선 건 돈줄을 옥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계를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엠지(MZ)세대 노조와 구분짓기를 통해 기존 노조를 부패세력으로 몰아감으로써 분열을 통한 노조 힘빼기에 나섰다는 진단도 나온다.
20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보고 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브리핑에서 “회계 관련 법령상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노동단체에 대해선 올해부터 노동단체 지원사업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8∼2022년 5년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양대 노총과 관련 산별, 지역본부 등에 제공한 지원금은 1500억원가량으로 이를 막아 경제적 제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지원금은 노동 관련 연구·교육·상담·각종 연구 사업 등을 명목으로 지급돼 왔다. 장학금 지원사업 등도 있으나, 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노동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을 노총의 지역본부 등에 위탁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지원금을 끊게 되면 노총 지역본부 등은 상근자 인건비 지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노조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지원을 중단할 경우 19개 지역상담소의 직원 32명 인건비 문제가 발생한다”며 “국회가 이미 승인한 사업 예산을 갖고 노조를 협박하는 행위는 비열하고 치졸하다”고 밝혔다. 조합비 세액공제 제도 원점 재검토도 노조 재정엔 부정적인 요인이다. 현재 노동조합비는 세법상 기부금으로 분류돼 연말정산 때 15% 세약공제되고 있다. 이를 중단할 경우 개별 노동자들은 직접적인 재정 타격을 입게 되고, 노조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노조를 부패세력으로 낙인 찍고 정부가 정당한 법집행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함으로써 노동개혁 추진을 위한 여론 지형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정부 의도도 엿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부 장관 보고 자리에서 “기득권 강성 노조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며 노조가 사회 발전을 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 역시 “과거에 정부가 ‘노동조합은 사회적 약자다. 노동자가 약자다’라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을 안 했다”며 “경제 활동 인구의 45%에 해당하는 엠지세대가 공정·투명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제 정부가 본연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정부의 ‘프레임 짜기’는 정부가 속도감 있게 ‘노동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터 닦기로 풀이된다. 정부는 노동시간 관리단위 변경을 통한 장시간 노동 허용과 파견 허용 대상 업무 확대 등의 노동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조활동의 핵심 자원인 돈을 통제해 집회나 파업을 묶으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가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조를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보고 손 보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했다.
노동계는 이번에 정부가 문제 삼은 노조 회계 등 자료 비치와 정부 지원금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정부가 ‘부패 노조’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무리한 프레임 설정에 나섰다고 반발했다. 공개 대상인 노조 회계자료는 조합원이 낸 조합비로 구성된 것이고, 이와 별도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지원금 집행 내역은 해마다 자체 감사를 거쳐 노동부와 지자체 등에 보고하고 승인받았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는 정부의 노동계 탄압에 반발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법 개정까지 무리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적 공세”라며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노조탄압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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