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에 대한 무리한 수사에 항의하며 지난 1일 분신 끝에 숨진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분신 당시 곁에 있던 노조 간부(동료)가 양씨를 말리지 않았다는 등 보도로 ‘자살을 방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동료의 죽음을 투쟁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며 의혹을 부추겼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동료는 양씨를 만류했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 뒤이은 정부의 강경 발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노조 혐오’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양씨 죽음을 동료가 현장에서 방치했다는 내용의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아직 사건이 결론 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는 변사 사건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7일치 지면에 실린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 제목의 기사에서 양씨 분신 당시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과 목격자 말을 근거 삼아, 분신 당시 곁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가 “양씨를 도우려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오른쪽 둘째)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언론노조에서 열린 ‘양회동 열사 분신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건설노조·언론노조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의 보도가 반노동을 넘어선 폭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양씨가) 바로 불을 지른 게 아니고 주위에 시너를 뿌려둔 뒤 동료가 왔을 때도 라이터를 든 채 ‘가까이 오지 마라. 여기 시너 뿌려놨다’고 경고해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괜히 다가갔다가 자극받은 양씨가 라이터를 먼저 당길 수도 있고, 만약 들어가서 말렸다면, 둘 다 같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당시 사건 현장에서 옆에 있던 <와이티엔>(YTN) 기자들의 진술을 봐도, 노조 간부는 (분신을 시도하는) 양씨에게 ‘하지 말라, 그러지 말라’고 계속 말렸다고 한다. (조선일보) 기사는 해당 기자가 알아서 쓴 거지, 경찰에 취재하거나 연락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폐회로티브이에는 음성 등 당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이 담겨 있지 않다.
해당 기사에 정부와 보수단체가 즉각 반응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씨 분신 당시 사진과 함께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건설노조가 양씨의 죽음을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증폭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신전대협’은 이날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노조 간부를 자살에 도움을 준 경우 해당되는 ‘자살방조’ 혐의로까지 고발했다.
건설노조와 언론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일보 보도를 ‘허위보도’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특히 ‘불길이 치솟’은 뒤 목격자인 동료가 ‘불을 끄거나 도움을 구하는 대신…휴대전화를 꺼냈’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양회동 열사가 동료에게 메신저로 자신의 결정을 이미 미리 알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해당 동료와 목격자의 통화가 오가던 중이었다”며 “목격자는 (양씨에게) 동료와 통화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양씨의 분신을) 만류했다”고 상세한 상황을 전하며 반박했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조선일보의 왜곡, 조작 선동은 스스로 정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노조 혐오 정서를 확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들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치졸한 공작”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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