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30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누리집
“77%라는 말을 듣고 ‘아 그게 진정한 지지율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잘하겠습니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개회사에서 “지난주 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해보니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77%가 넘었다”고 언급하자 이에 화답한 것입니다.
이날 행사에는 중소·벤처기업 관계자 및 소상공인 500여명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9개 그룹 총수들도 참석했는데, 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의 덕담에 윤 대통령도 감사 인사를 전하려 한 발언이지만, ‘긍정평가 77%’가 나온 조사에 눈길이 갑니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30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① 77% 긍정평가 이유는
77%라는 수치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5~18일까지 전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업체 30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윤석열 정부 중소기업 정책 만족도 및 정책과제’ 조사에서 나왔습니다. 조사 결과, 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에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26.4%, ‘만족한다’ 51.2%로 합치면 77.6%입니다. 불만족하다는 기업은 22.4%였습니다.
눈여겨볼 지점은 ‘윤 정부가 가장 잘한 중소기업 정책’으로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 원칙 수립’(57.8%)을 1위로 꼽았다는 점입니다. 또 중소기업들은 ‘한국경제 최우선 해결 과제’로 ‘경직된 노동시장’(40.3%)을 들었습니다. 이는 ‘대·중소기업 양극화’(18.5%)보다 2배 이상 높은 비율입니다. 마지막으로 ‘윤 정부가 2년 차에 중점 추진해야 하는 중소기업 정책’으로는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개혁’(59.7%)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② 주 69시간 부정평가는?
지난 3월6일 윤석열 정부는 현재 최대 주 52시간인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해 주 최대 69시간(주7일 기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노동 시간을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가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에 직면한 바 있습니다. 유연해진 노동시간 정책이 사용자의 뜻에 따라 특정 주, 특정 일에 쏠린 장시간 노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3월17일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1003명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불규칙·장시간 노동, 삶의 질 저하 우려되어 반대’가 56%, ‘바쁠 때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쉴 수 있어서 찬성’이 36%였습니다. 정부가 양대 노총의 대안으로 언급하면서 ‘엠제트(MZ)노조’로 부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4월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특별상을 수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2023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은 하루에 노동자 5~6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현실을 알리고 기업의 책임과 처벌 강화를 위해 2006년부터 열렸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③ 노동자들과 ‘치맥’은 언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사회적 합의를 뒤집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나옵니다. 정부는 시행 1년이 갓 지난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겠다고도 나선 상태입니다.
‘노동조합 때리기’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들고나온 윤석열 정부에 노조는 과도한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노동절을 앞둔 4월28일 성명을 내 윤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송 위원장은 “2018년 ‘주 최대 52시간’에 관해 여야가 합의한 이후 전면시행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노동시간 개편의 문제는 노동인권 보호 관점에서 계속 이어져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의 기준에 맞도록 국내법과 제도를 정비·해석하고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중소기업인대회에서 윤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치맥’을 즐겼습니다. 한 기업인이 해외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을 계속하시면 힘들지 않냐고 질의하자 윤 대통령은 웃으며 “해외에 나가면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지 피곤한 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기업인이 “중소기업의 지지율이 77%라니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스트레스가 없어지실 것 같다”고 하자, 대통령은 “기업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나. 기업이 잘 돼야 근로자가 잘되고, 그래야 나라도 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인들에게서 나온 77% 긍정 평가는 의미 있는 수치입니다. 다만 77%에 취해 노동자를 계속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도 잘되고, 또 노동자가 잘돼야 기업도 잘 됩니다.
참고로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37%, 부정평가는 56%였습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