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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민주·투쟁’ 양회동 유서 글씨…필적감정사 “한 사람 것”

등록 2023-05-25 06:00수정 2023-05-25 09:30

양회동씨의 유서 필적을 감정한 이희일 감정사가 24일 <한겨레>에 의혹이 제기된 유서가 양씨의 필적임을 설명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양회동씨의 유서 필적을 감정한 이희일 감정사가 24일 <한겨레>에 의혹이 제기된 유서가 양씨의 필적임을 설명하고 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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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동이 유서에 적은 ‘동지’라는 글자가 화면에 크게 띄워졌다. ‘ㄷ’과 ‘ㅗ’를 바로 이어 쓰고 ‘ㅇ’의 왼편 아래쪽에 힘이 들어간 ‘동’, 윗부분을 살짝 끌어 쓴 듯한 ‘ㅣ’ 모양의 ‘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지난 1일 분신한 뒤 끝내 숨진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 양회동씨가 3건의 유서에 적은 각각의 ‘동지’란 글자는 전문가의 눈엔 영락없이 한 사람의 글씨였다.

양씨의 유서를 감정한 이희일 한국법과학연구원 문서(필적)감정사는 24일 <한겨레>와 만나 “전문가 입장에서 사실 그리 어려운 감정은 아니었다. 유서는 동일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월간조선>은 지난 18일 “양회동씨의 유서 3장 중 1장은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며 “굳이 필적 감정을 하지 않고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차이가 났다”고 보도했다. 이어 “누군가가 양씨의 유서를 위조했거나 대필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전문가의 감정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건설노조 탄압 대응 100인 변호인단과 유가족은 지난 19일 이희일 감정사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30년 이상 감정 경력을 지닌 이희일 감정사는 지난 5년 동안 법원 의뢰로 351건의 필적을 감정한 베테랑이다.

이희일 감정사는 필적이 다르다는 의혹에 양씨의 수첩 글씨를 갈무리한 자료를 한겨레에 먼저 내보였다. 2022년 매일 날짜와 함께 짤막한 양씨의 손글씨가 50쪽에 걸쳐 적혀 있다. 11월28일의 글씨는 ‘진보정당 등에 보낸 유서’에 적힌 글씨체로 보였다. 같은 종이에 담긴 11월29일 글씨는 월간조선이 필체가 다르다고 지적한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유서 글씨와 같아 보였다. 한 종이 안에서도 다양한 글씨체가 드러난 셈인데 이희일 감정사는 이를 ‘변화성’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라도 정서(정자체로 적은)를 하는 경우, 급한 경우, 심리적으로 불안한 경우 다양한 서체가 있습니다.”

반면 변하지 않는 ‘항상성’도 있다. 이희일 감정사는 “운필 방법(점을 찍고 획을 긋는 방법)이나 자모를 쓴 순서 같은 형태는 고정된 패턴이 있다. 이는 심지어 발로 글씨를 써도 같다”며 “한 사람의 변화성과 항상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적 감정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의 유서 감정은 이런 양씨 글씨의 고유한 특징을 생전의 다른 글들에서 파악해낸 뒤, 그 특징을 바탕으로 문제가 된 유서와 다른 유서, 평소의 글을 비교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양씨의 문장에는 ‘투쟁’, ‘민주’ 같은 단어가 많아 필적 감정은 좀 더 수월했다. 이희일 감정사는 “같은 문장을 비교하는 게 가장 좋고, 단어가 반복되면 좀 더 수월하다”며 양씨가 자음과 모음을 이어붙인 모양, 힘을 준 부분을 세세하게 지목했다. 월간조선이 문제 삼은 양씨의 유서 속 ‘투쟁’은 ‘ㅌ’을 쓰는 방식, 쟁의에서 ‘ㅇ’을 적는 방식 등에서 양씨가 생전에 적은 ‘지출결의서’에 적힌 글자와 같은 쓰기 방식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희일 감정사는 “글씨를 흘려 쓴 정도에서 차이가 나 다른 글씨로 보일 뿐 동일한 운필 방식”이라고 말했다.

양씨의 ‘민주’에서 ‘민’자는 ‘ㅣ’와 ‘ㄴ’이 흐르듯 이어지다가 다시 힘을 주어 ‘ㄴ’을 완성해 내는 모습이다. 이는 수첩에 적은 ‘민’자와 같다. 이희일 감정사는 “점을 찍는 방식, 힘을 주는 방식 등은 위조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글자와 단어별로 해당 유서를 양씨가 작성한 것으로 볼 수 있는 28개 특징과 사진들을 담아 ‘유서 필적과 양회동 필적은 상사(유사)한 필적으로 사료된다’는 내용의 필적감정서가 작성됐다.

앞서 월간조선 기자와 데스크 등을 고발한 건설노조와 유가족은 이날 경찰청에 이희일 감정사가 작성한 필적감정서를 추가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양회동 열사가 유서에 적은 것처럼 노조 활동을 ‘건폭’으로 몰아가는 무리한 수사와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고 건설현장의 정당한 노조 활동을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월간조선이 대필 의혹을 제기한 유서에는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 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습니다”라고, 양씨의 손글씨로 적혀 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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