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로얄호텔서울에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시민단체쪽에서 ‘노예제 도입중단’ 팻말을 세워놓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중년 여성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돌봄 시장의 질은 낮아지는 정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37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고은씨는 31일 고용노동부가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주최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관련 공청회에서 이런 우려를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 시범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일단 노동부는 올해 안에 필리핀 국적 노동자 100여명이 국내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을 뼈대로 시범사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가 서비스 수요자나 국내 가사노동자의 의견을 듣겠다며 마련한 이날 자리에서는 가사 노동자의 저임금 고착화와 가사 서비스 질 하락, 이주 노동자 차별 가능성 등 각종 우려가 쏟아졌다.
노동부는 이날 발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도입 비전문 취업비자(E-9) 시범사업 계획안’에서 E-9 비자를 활용해 올해 안에 시범적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뽑기로 했다. 현재 E-9비자로는 제조업과 건설업, 농축수산업과 서비스업 일부 업종에 취업할 수 있는데, 이를 가사 서비스까지 넓힌다는 것이다. 시범사업 대상 지역은 일단 서울로 제한했다.
시범사업에서는 우선 필리핀 국적 노동자를 가사노동자로 받아 들일 계획이다. 정부가 인증하는 가사 서비스 제공 기관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기관이 배정한 가정에 노동자가 출퇴근하는 식이다. 이들은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가사노동자법)을 적용해 최저임금을 보장받는다. 초기 숙소·교통·통역비 등 추가 비용이 드는만큼 서울시가 예산 1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상임 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은 “가사서비스 분야는 내국인 종사 인력이 감소하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외국인력 활용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보장하고, 인증 기관을 거쳐 고용하는 방식으로 그동안 불거진 이주 노동자 차별 논란을 줄이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선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정부가 여전히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 필요성으로) 낮은 비용을 얘기하고 있어 차등화의 시작점이 외국인 가사 노동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실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3월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법안을 내기도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정부는 가사 노동력 부족을 이야기하지만, 가사 노동 분야의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시장 비용 절감만 목적으로 한 이주노동자 도입은 돌봄의 공공성을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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