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무법인 면접 과정에서 ‘수습은 근로자가 아닌데 왜 임금을 줘야 하냐’는 얘기, ‘30대 여자니까 어차피 기업에 못 간다’ 등 말을 들었다. 또 여성 노무사들에게 2년 이내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릴레이로 답하게 하는 등 성차별·시대착오적 질문도 있었다.”(‘2023년 수습노무사 갑질 실태조사 보고서’ 중)
노동 관련 전문 직종인 노무사조차 의무 사항인 6개월 수습 과정에서 갑질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노무사와 수습노무사로 구성된 ‘수습노무사 개선티에프’(TF)가 19일 공개한 2023년도 수습 공인노무사 갑질 실태조사 결과, 수습노무사들은 ‘채용 면접에서 사적인 질문을 받았냐’는 질문에 39.1%가 “그렇다”고 답했다. 심지어 채용 면접에서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에 해당하는 발언을 들었다는 응답률도 5.8%였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구직자 출신 지역 등 채용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묻는 걸 금지한다. 이번 조사는 7월12일∼20일까지 공인노무사회가 주관하는 집체교육 수강인원 13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법으로 정해진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고 연장근로에 가산 수당도 지급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났다. “정해진 근무시간 외 조기 출근이나 야근을 강요한다”(28.9%), “업무시간 외 카카오톡, 문자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았다”(26.7%)는 수습 노무사가 열 명 중 세 명에 가까웠다. 이런 근무시간 외 노동에 대해선 68.1%가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분만 받았다”고 답했다.
폭언, 괴롭힘 등 직장 내 괴롭힘 또한 적잖다. 수습 노무사 15.9%가 “상사가 업무 지시 중 위협적인 말이나 폭언을 한다”고 했다. “고참이 업무를 가르치면서 괴롭힌다”는 응답도 11.6%였다. 노무법인의 수습 노무사 교육은 주로 선임자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업무를 하는데, 이때 ‘을’의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수습노무사의 처지를 이용해 갑질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수습노무사 처우개선 티에프 정태권 노무사는 “수습노무사들은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안전하게 수습을 할 권리가 있음에도 어렵게 구한 수습처이기에 부당한 처우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며 “부디 노동관계법령의 전문가인 공인노무사들이 본인의 권리에 관해 주장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직시하고 시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수습, 현직 노무사 34명은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고용노동부, 한국공인노무사회, 한국공인노무사회 교육연수위원회를 대상으로 수습교육 당시 인권 침해를 당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수습 노무사의 국가인권위 진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인노무사의 경우 자격증을 취득한 뒤 한 달 동안 한국공인노무사회가 진행하는 집체교육을 받고, 노무 법인에서 6개월 동안 수습 기간을 거친다.
진정서에는 집체교육을 주관한 한국공인노무사회와 그 교육연수위원회는 수습노무사들의 병결(병으로 인한 결석) 신청을 거부하고 불출석 처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사 연수를 이수하기 위해선 집체교육 출석률 90% 이상을 충족해야 해, 출석률은 중요한 교육 이수 요건 중 하나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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