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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갈길 먼 비정규직법] ③ 파견노동자, 확대되는 멍에

등록 2006-12-07 19:48수정 2006-12-12 11:15

갈길 먼 비정규직법
갈길 먼 비정규직법
‘왕따’ 파견노동자 되레 늘듯
노동부 ‘허용업무’ 조정 유통서비스업 포함 가능성
열악한 노동환경 확대·신분 보장도 불확실해져

“남의 사업장에서 주기적으로 해고를 감수하며 일하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겪는 패배감을 아시나요? 망망대해에서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쪽배에 홀로 탄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정민씨(가명·32)는 파견노동자다. 파견업체에 고용된 이씨는 대형 생명보험회사 전산본부에서 웹 디자인·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파견나간 생명보험회사의 정규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일한다.

“속 좁아 보일 수도 있지만 명절 선물을 정규직이 하나씩 들고 가는데 눈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괜히 저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씨는 임금과 노동조건은 애초 정해진 것이니 차이가 나도 참을 수 있었지만 회식, 체육대회 등 회사 행사에 가지 못하고 회사가 명절 때 주는 선물에도 차별을 받을 땐 ‘굴욕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파견노동자는 해마다 늘어,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 2002년 8만8천명에서 올해엔 13만1천명으로 증가했다. 새로 시행되는 비정규직법안은 이런 추세를 제어하기는커녕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동부는 법안 통과 뒤 곧바로 “파견허용 업무가 노동시장의 인력 수요를 반영하지 못해, 불법파견이 늘고 있다. 시행령을 통해 파견허용 업무를 재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견수요가 적은 기존 업무와 수요가 예상되는 업무를 ‘맞바꾼다’는 얘기다. 사실상 불법 파견이 가장 성행하는 업무를 골라 ‘양성화’시키는 조처다. 일단 합법적 파견노동자 규모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체 전반의 불법 파견노동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 않다.

노동부 ‘허용업무’ 조정 유통서비스업 포함 가능성
열악한 노동환경 확대·신분보장도 불확실해져

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에는 ‘파견허용 업무’가 컴퓨터 보조원 등 26개로 제한돼 있다. 노동부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이들 업무 중 비서·타자원 및 관련사무원, 전화외판원, 수금원 등 3개 직종에만 59.8%의 파견노동자가 일하는 등 직종별 쏠림현상이 심하다. 파견노동이 미미한 직종 대신, 새로 허용될 업무는 현재 불법파견이 크게 성행하는 유통서비스업 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파견노동자 수 년도별 추이
파견노동자 수 년도별 추이

현재 우리나라의 대다수 파견업체들은 규모도 영세한 저임금 업체로, 사회보험에도 미가입한 업체들이다. 때문에 파견노동자의 증대는 ‘열악한 노동환경’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파견업체 수는 1,167곳이며 이 가운데 파견노동자 수가 50인 미만인 업체가 875개로 75%를 차지한다. 300인 이상은 52곳(4%)에 불과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가 근로감독도 제대로 못하면서 파견을 확대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개정된 법에서는 2년 이상 동일사업장에서 일한 파견노동자들의 신분보장도 불확실해졌다. 법 개정 전까지는 사용사업주(원청고용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고용의제)했지만, 개정된 법에선 사용사업주가 과태료를 물면,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의무(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개정 법률에선 불법파견 행위가 적발되면 ‘고용의무’를 부과하도록 했지만, 불법파견 판정을 받기가 쉽지 않아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도 크다. 김성희 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최근 케이티엑스 여승무원 사례에서 보듯,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기준이 너무나 엄격해졌다”며 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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