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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불신의 현대차 ‘역주행’ 위기

등록 2007-01-07 19:06수정 2007-01-08 16:55

[뉴스 분석] 도요타와 비교 진단한 ‘속병’
도요타 50여년 정리해고·파업 없어

세계 경쟁 위해선 노동·생산 유연화 중요
유연화 이루려면 노사 신뢰가 필수
갈등은 공멸의 길

현대자동차가 연초부터 노사 갈등으로 시끄럽다. 연말 상여금 차등지급에 불만을 품은 일부 노조원들의 소란이 발단이다.

현대차 노사 갈등을 지켜보는 외부 시각도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대차의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노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한가한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현대차의 밑바닥에서부터 위험신호가 켜진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세계 6위의 자동차업체에 오른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생산성은 경쟁력 1위인 도요타의 60% 수준이고, 자회사인 중국의 베이징현대차보다도 떨어진다. 잘나가던 미국 시장에서도 환율 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일부 차종은 도요타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뒤처졌다. 최한영 현대차 상용담당 사장은 “2003년 기준 1인당 매출액 및 영업이익이 도요타의 30%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도요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4조원을 넘는다. 2001년 이후 다섯번이나 연간 이익이 100억달러를 넘었다. 도요타 경쟁력의 핵심은 이른바 작업자 중심의 ‘도요타 생산방식’이다.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현장밀착형 교육훈련을 통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한 사람이 여러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처럼 생산의 유연화, 노동의 유연화가 가능한 생산방식은 최첨단 자동화 설비보다 생산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의 한 전문가는 “과거엔 생산규모가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지금은 생산방식이 얼마나 유연하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도요타 생산방식을 본받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도요타의 제도나 설비는 흉내낼 수 있어도, 끝내 따라갈 수 없었던 마지막 ‘비결’ 때문이다. 바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심과, 그것의 바탕이 된 노사 협력, 노사 신뢰의 문화다. 모두들 도요타의 50년 이상 무파업과 연속 흑자 기록에 감탄한다. 하지만 50년 이상 단 한번도 정리해고가 없었던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이 그것을 가능케 한 대목은 애써 외면한다. 도요타는 회사 어느 규정에도 고용보장 조항이 없지만 고용 불안이 없다. 반면 현대차는 노사간 단체협약 곳곳에 고용보장 장치가 있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다. 아이러니로 보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 1998년 미국의 신용평가회사가 도요타의 종신고용을 문제삼아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겠다고 경고하자 오쿠다 히로시 당시 사장은 “정리해고를 하는 경영자는 자신부터 먼저 할복해야 한다”고 맞섰다. 반면 한국적 현실은 회사가 어려운데 감원을 망설이는 최고경영자는 ‘무능’이라는 낙인과 함께 바로 목이 잘린다.

경영자가 목숨을 걸고 직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기업과, 형편이 조금만 어려워도 가차없이 감원을 하는 기업은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이 같을 수 없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글로벌 톱5’ 달성이라는 회사의 비전과 가치보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데 더 집착한다. 또 한쪽 라인은 주문이 밀려 연장근무를 하고, 바로 옆의 라인은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데도, 노조는 인력 전환배치에 소극적이다. 원인은 모두 노사 불신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돈에 똥독이 들었다”고 자조하면서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 일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기고 보자”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차는 노사 협력이 필요한 일들마다 되는 일이 없다. 노사는 모두 주간연속2교대제(심야를 제외한 나머지 근무시간을 2교대로 운영) 도입이 임금 보전과 생산량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최근 전주공장에서 치러진 노조 찬반투표에서는 부결됐다. 울산의 5공장 증설도 주차장 확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제자리걸음이다. 아산공장은 쏘나타 생산을 울산공장으로 넘겨 그랜저 전용공장으로 바꾸고, 울산공장은 대신 클릭을 인도공장으로 넘기는 차종 재배치 계획도 진전이 없다.

노사 불신은 노사 모두의 책임이다. 현대차의 한 간부는 “회사는 지금껏 노조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한 적이 없고, 노조도 더 큰 공동의 이익을 위해 양보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노사 모두 상대방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변화된 모습을 보이길 망설인다. 정몽구 회장 스스로 신년사에서 노사 화합을 화두로 꺼냈지만, 회사는 “노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노조는 “회사가 먼저”라고 버틴다. 내가 먼저 변했다가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뺏길까 겁내는 모습이다. 통상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차 노사 갈등은 둘 다 패자가 될 공산이 높다. 노사가 서로를 향해 “회사가 망한 뒤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며 삿대질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세계 자동차업계 1·2위였던 미국의 지엠과 포드가 본격적인 위기의 나락으로 빠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3년이었다. 현대차의 위기 신호는 노사 신뢰가 없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의 자화상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차의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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