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지난 3월 서울 구로동 서울관악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고용보험수급자격인정신청서를 직원에게 제출하려고 길게 늘어서 있다. 정용일 <한겨레21>기자 yongil@hani.co.kr
[실업금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② 취약한 고용안전망
가구주 실직가정 절반 이상 빈곤층 전락
노동부선 “실업급여 수급률 44%” 주장
비공식 실업자수 많아 현실은 더욱 열악
가구주 실직가정 절반 이상 빈곤층 전락
노동부선 “실업급여 수급률 44%” 주장
비공식 실업자수 많아 현실은 더욱 열악
인천 부평 지엠대우자동차 조립부 이아무개(48)씨에게 ‘실직’의 추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다. 지난 2001년 2월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뒤로는 단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는 꼬리표는 그 어느 때보다 그를 옥죄어왔다.
해고 당시 이씨가 기댈 곳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지원센터뿐이었다. 하지만 한달 250만원을 벌던 그에게 주어진 돈은 고작 90만원 가량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6개월 뒤엔 끊겼다. 마흔줄에 접어든 그가 6개월 안에 다른 곳에 취업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고용지원센터에선 수급기간이 종료됐다고만 했다. 이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을 보낼 수도, 가족끼리 외식 한번 할 수도 없는 ‘삭막한’ 생활이 시작됐다. 재취업에 실패한 이씨는 결국 창업을 선택했다. 정리해고자의 재취업을 돕는 ‘희망센터’에도 가봤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비를 쓰고 남은 퇴직금에 은행 빚을 보태 집 주변에서 치킨집을 열었다. 초기엔 오토바이 배달이 익숙지 않은 탓에 몇 차례나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다.
무엇보다 매달 꼬박꼬박 일정액을 월급으로 받아온 그에게 일정치 않은 수입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즐겨 피던 담뱃값이 2500원으로 오르자, 금연을 시작했다. 한창 학원에 다니며 공부해야 할 아이들에게 광고 전단지 배포를 도와달라고 했을 땐 미안함에 고개를 떨궜다.
2003년 전국을 덮친 ‘조류 인플루엔자’ 파동은 이런저런 고생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채규모가 늘고 마이너스 통장이 여러개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 시작했지만 쉽진 않았다. 평소 사장과 안면이 있는 싱크대 공장에서 잠시 일한 것과 송도 새도시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 것이 전부였다.
두 곳에선 한 달 100만원을 벌기도 벅찼다. 새로 기술을 익혀야 하는 처지였기에 밑바닥 수준의 임금을 감수해야했다. 급기야 큰 아이의 대학 입시를 돌봐야 할 아내마저 구직활동에 나섰다. 그는 “아이가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간 것이 아빠가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한 탓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2006년 5월 복직이 되고 나서야 이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직기간 5년 3개월 동안 얻은 것은 3000만원의 빚과 ‘뭘 해도 잘 안된다’는 상실감뿐이었다. 한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은 최근 들어 다시 한가해졌다. 경기악화로 물량이 줄어들면서, 그는 요즘 일주일에 3일만 공장에 나간다. 2001년 정리해고 직전에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이씨는 “(또 실직되면) 이제 허리가 안 좋아서 노가다도 못 나가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과거 장기간 실직 상태에 놓였던 이씨의 경우처럼 실직은 급격한 소득감소로 이어져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높이지만, 이를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뒷받침할 고용안전망은 매우 취약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1일 한신대 전병유 교수(경제학)가 일자리를 잃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이들의 규모를 추산한 결과를 보면, 무려 823만명(올해 1월 기준)에 이른다. 지난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 제도는 직전 18개월간 180일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비자발적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혜택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선 고용보험 적용대상이지만 가입하지 못한 이들이 196만명에 이른다. 주15시간 미만 근로자 등 고용보험 적용 제외 대상자도 165만명이나 된다. 여기에 영세 자영업자 412만명과 청년층 등 신규 실업자 4만명, 실업급여 수급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수급기간이 종료된 실업자 46만명 등도 ‘사각지대’에 속한다. 지난해 가구주가 실직한 경우, 52.9%의 가구가 다음 분기에 빈곤 상태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실직을 당한 임금노동자 10명 중 1명만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7년 기준으로 전체 실직한 임금노동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은 10.3%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가입해 있더라도 까다로운 수급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장기간 구직활동을 하고 있더라도 자발적으로 이직한 경우는 수급자격이 아예 없다. 최근 노동부는 올 상반기 실업자 중에서 실업급여를 받은 비율이 43.6%에 이르러 고용보험 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통계청이 집계하는 ‘공식’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실업자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긍정적 평가를 내리긴 이르다. 지난해 경제위기 이후 그냥 쉬거나 취업준비만 하는 ‘비경제활동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스스로 ‘실업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재취업이 어려운데다 실업급여 수급도 쉽지 않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속한 이들일수록 장기실업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더 많다.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의 실직경험률은 12.1%인데 비해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실직경험률은 28.3%, 고용보험 적용 제외자의 실직경험률은 47.4%에 이른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제위기가 고용위기를 매개로 하여 사회위기로 전이되는 것은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실직자들이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우선 고용보험 적용대상이지만 가입하지 못한 이들이 196만명에 이른다. 주15시간 미만 근로자 등 고용보험 적용 제외 대상자도 165만명이나 된다. 여기에 영세 자영업자 412만명과 청년층 등 신규 실업자 4만명, 실업급여 수급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수급기간이 종료된 실업자 46만명 등도 ‘사각지대’에 속한다. 지난해 가구주가 실직한 경우, 52.9%의 가구가 다음 분기에 빈곤 상태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실직을 당한 임금노동자 10명 중 1명만 실업급여를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7년 기준으로 전체 실직한 임금노동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는 비중은 10.3%에 그쳤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가입해 있더라도 까다로운 수급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장기간 구직활동을 하고 있더라도 자발적으로 이직한 경우는 수급자격이 아예 없다. 최근 노동부는 올 상반기 실업자 중에서 실업급여를 받은 비율이 43.6%에 이르러 고용보험 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통계청이 집계하는 ‘공식’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실업자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긍정적 평가를 내리긴 이르다. 지난해 경제위기 이후 그냥 쉬거나 취업준비만 하는 ‘비경제활동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스스로 ‘실업자’가 되는 것을 포기한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재취업이 어려운데다 실업급여 수급도 쉽지 않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속한 이들일수록 장기실업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더 많다.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의 실직경험률은 12.1%인데 비해 고용보험 미가입자의 실직경험률은 28.3%, 고용보험 적용 제외자의 실직경험률은 47.4%에 이른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경제위기가 고용위기를 매개로 하여 사회위기로 전이되는 것은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실직자들이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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