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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파업 때마다 노조 옭아매는 ‘업무 방해죄’

등록 2013-12-24 20:07수정 2013-12-25 13:41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 안경 쓴 이)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로 강제진입하는 경찰에 맞서던 중 연행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A href="mailto:bong9@hani.co.kr">bong9@hani.co.kr</A>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 안경 쓴 이)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로 강제진입하는 경찰에 맞서던 중 연행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번 철도파업 필수인력 유지
노조법상 처벌 근거 없는데도
일제 ‘노동 탄압법’ 계승해 처벌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
ILO도 10여차례 개선 권고
경찰은 지난 22일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간부 9명을 체포하겠다며 5500명을 동원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실로 강제진입할 때 체포영장을 근거로 제시했다. 영장에 적힌 혐의는 모두 형법상 업무방해죄다. 파업을 하다 체포 또는 구속되거나 교도소에 가는 이들은 대개 이 죄목을 적용받는다. 한국에서 업무방해죄는 파업을 탄압하는 ‘전가의 보도’다.

■ 왜 노조법이 아니라 업무방해죄인가? 현행법에서 파업을 포함한 노동쟁의를 규율하는 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이다. 하지만 정부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도 노조법 위반을 이유로 처벌에 나서지 않는다. 이 법이 파업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은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3조), “근로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현행범 외에는 이 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않는다”(39조)고 명시하고 있다. 단, 파업의 수단이 폭력적이거나 필수 유지 인력 등을 지키지 않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 이번 철도파업처럼 필수 유지 인력을 지키면서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쟁의행위를 처벌할 근거는 노조법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노조 지도부를 잡아들여 파업의 불길을 잡기 위해 꺼내드는 게 바로 형법의 업무방해죄다. 형법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하는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처벌도 센 편이다. 어길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업무방해죄는 평화로운 쟁의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 ‘불법파업’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된다.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발표 자료를 보면, 2002~2006년 노동형사사건(1심) 가운데 30.2%가 업무방해죄 적용을 받았다. 나머지는 폭력 등이다.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쟁의행위의 유형을 보면 파업(1313건·44.1%), 점거(592건·19.9%), 피케팅(474건·15.9%), 준법투쟁(115건·3.9%), 태업(37건·1.2%) 등의 차례였다.

■ 국제기구도 10여차례 개선 권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업무방해죄가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 만든 법이며 실제 운용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본다. 윤애림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업무방해죄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탄압하기 위해 들여온 조선형사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당시 사용자는 일본이었고 노동자는 조선인이었다. 파업 같은 쟁의행위를 원천 봉쇄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설명했다. 정작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망 뒤 사실상 이 법을 사문화해 현재 파업 등 쟁의행위 자체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 심어 놓은 ‘노동탄압법’이 21세기 한국에서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노동자의 파업을 업무방해 혐의로 탄압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선진국에는 업무방해죄 자체가 없다. 파업 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나면 폭력 혐의로 처벌할 뿐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무방해죄는 산업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산업화 시대 유럽에서 노동자의 파업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현재 이 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그동안 10여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에 업무방해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11월에도 “한국 정부가 형법 314조(업무방해)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시키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즉각 취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보고해줄 것”을 촉구했다.

■ 전문가들 “폐지해야” 법 자체의 폐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금속노조 법률원의 송영섭 변호사는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하지 않을 때 근로계약의 위반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형벌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개인의 노동 권리를 공권력 아래 두고 강제 노동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위헌 요소가 강한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교수는 “폭력 등이 수반된 파업이라면 다른 형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굳이 업무방해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선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폭력을 수반한 업무방해만 처벌하도록 하거나 쟁의행위에 업무방해죄 적용을 배제하는 조항을 노조법에 넣자는 등의 대안도 내놓고 있다.

법원의 판단도 갈수록 신중해지는 추세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전원일치로 업무방해죄가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도 “정당한 쟁의행위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011년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파업이 언제나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 운영에 손해가 초래됐을 경우에만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적용 범위를 좁혔다. “집단적 근로 제공 거부는 당연히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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