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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일본 청소차는 낮일…한국은 왜 밤에 할까

등록 2016-09-06 08:59수정 2016-09-12 10:01

도쿄, 햇살 아래 환경미화
“밤에 작업하면 부상 위험”
음식물 수거해도 냄새 안 배

서울, 어둠속의 환경미화
지자체, 민간업체에 위탁하며
‘시민 출근 전 수거’ 요구
업체는 이윤 욕심에 중노동 강요
9월2일 낮 12시20분께 일본 도쿄 중심부인 이다바시역 근처에 주차된 청소차. 음식쓰레기가 그득 담겼지만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정은주 기자
9월2일 낮 12시20분께 일본 도쿄 중심부인 이다바시역 근처에 주차된 청소차. 음식쓰레기가 그득 담겼지만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정은주 기자

9월2일 낮 12시20분

일본 도쿄 중심부인 이다바시역 근처 라면집 앞에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1t짜리 파란 청소차가 라면집 앞에 멈췄다. 청소차 조수석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자 평상복을 입은 40대 환경미화원이 내렸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왔어요.” 청소차는 광택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음식물쓰레기가 그득 담겨 있지만 뚜껑만 닫으면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도쿄의 환경미화원들은 낮에 작업을 한다. 도쿄 23개 자치구의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 환경미화원은 모두 4200여명. 이들은 오전 7시40분에 출근해 오후 4시25분에 퇴근한다. 크고 작은 골목길에 자리한 ‘집적소’를 돌아다니며 생활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운반한다. 도쿄에서 45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은퇴한 오시다 고로(66)는 “재활용 분리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잘못된 배출 방법을 바로잡는 행정조치를 하려면 낮에 일해야 한다. 밤에 일하면 소음이 심해 주민들도 불편하고 무엇보다 환경미화원들이 다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도쿄 지방정부는 환경미화원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2000년 4월 청소 업무가 도쿄도에서 23개 자치구로 이관되면서, 일부 사업장폐기물 수집·운반은 민간업체로 넘어갔지만 생활쓰레기는 자치구가 맡았다. 1949년에 결성돼 도쿄 환경미화원 95%가 가입한 ‘도쿄청소노동조합’(도쿄청소노조)이 “생활쓰레기는 민간에 위탁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라고 강력히 맞선 결과다. 도쿄의 ‘청소 서비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째, 생활쓰레기를 모아놓는 집적소를 23개 자치구에 30만곳으로 늘렸다. 둘째, 고령자나 장애인이 요청하면 아파트 현관 앞까지 찾아가 쓰레기를 수집하는 ‘문전 수거’ 시스템을 도입했다. 홀로 사는 노약자가 며칠 동안 쓰레기를 내놓지 않으면 환경미화원이 자치구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하기도 한다. 셋째, 도쿄청소노조가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해 재활용 분리 및 배출 방법을 교육하고 폐기물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연다. 도쿄청소노조 소메 히로유키 서기장은 “환경미화원은 어떻게 하면 생활쓰레기를 줄이고 지역을 깨끗이 유지할지 지역 주민과 계속 대화하는 청소 전문가”라며 “청소업무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 단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공무이자 공공서비스라는 인식이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도쿄 환경미화원이 처음부터 ‘청소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오시다 고로는 “과거엔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처럼 다뤄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제대로 된 작업복도 보호구도 없어 위험한 환경에서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며 “인간다운 노동환경을 쟁취하려는 청소노동자의 싸움은 수십년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성과는 1971년 미노베 료키치 도쿄도지사의 ‘쓰레기와의 전쟁’ 선언을 계기로 나타났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출신인 미노베 도지사는 임시직이던 환경미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임금도 크게 올렸다. 또 작업복과 보호구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목욕과 세탁 시설도 마련했다.

도쿄청소노조는 지방정부와 손잡고 청소차도 개조했다. 조수석에 타기 쉽도록 차량 높이를 낮추고 자동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다. 배기 가스통 출입구를 앞쪽으로 빼내 청소차를 뒤따라오는 환경미화원들이 배기가스에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또 환경미화원이 생활쓰레기와 함께 청소차에 빨려들어가는 사고를 막기 위해 발로 압축기계를 멈출 수 있는 안전바를 설치했다. 소메 서기장은 “노사가 참여하는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서 위험한 작업 방식은 고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일본 노동안전위생법(산업안전보건법)은 50인 이상인 사업장에선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해 매달 1회 이상 노동자의 안전·보건 활동을 지원하도록 돼 있다. 과반수 노조가 추천하는 노동자 쪽 위원이 절반 이상 참여해야 한다. 여러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해온 산업의(직업환경의학전문의) 히라노 도시오는 “노동현장을 순회하며 산업재해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요소를 파악하고 개선안을 건의해왔다”며 “노동안전보건위가 만장일치로 결의하면 사용자는 이를 반드시 지킨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우리나라 환경미화원은 대부분 밤 11시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밤새 청소작업을 한다. 작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덜컹거리는 청소차에 매달려 이동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환경미화원은 대부분 밤 11시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밤새 청소작업을 한다. 작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덜컹거리는 청소차에 매달려 이동하기도 한다. 연합뉴스

8월28일 밤 9시20분

어둠이 깔린 서울 강동구 길동역 앞. 청소 용역업체에서 12년째 청소차 운전기사로 일하는 김기만(가명·57)씨가 운전석에 올라타려다가 휘청했다. 청소차의 높고 좁은 발판 때문이다. 김씨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이 발판을 딛고 차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통상 운전기사는 주로 환경미화원 2명과 함께 생활쓰레기를 수집하고 운반한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할 땐 운전과 수거를 혼자 해야 할 때도 적지 않다. 환경미화원이 손수레로 골목을 돌아다니며 배출된 종량제봉투를 옮기는 동안, 운전기사는 큰길에 놓여 있는 음식물쓰레기를 먼저 수집해 차에 싣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 작업을 끝마치려면 어쩔 수 없다. 강원도 원주에서 청소노조를 결성한 뒤 환경미화원으로 5년째 일하는 이선인 민주노총 일반노조협의회 의장은 “지방정부가 청소업무 지시서에 ‘시민이 출근하기 전에 생활쓰레기를 다 치워야 한다’고 적어놓았다. 우리나라 환경미화원들은 대부분 밤 11시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밤샘 청소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작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불법’도 감내해야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차량 운행 시 사람은 차량 안에 탑승하게 돼 있다. 하지만 환경미화원들은 청소차 뒤쪽 발판을 밟고 한 손으로 매달린 채 이동하기 일쑤다. 다른 안전장치는 없다. 덜컹거리는 청소차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하루에 수십㎞를 달린다. 청소차에서 떨어지거나 다른 차량에 들이받혀 다치는 사고가 종종 생긴다.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의 ‘환경미화원의 작업별 산업재해 발생 형태에 관한 연구’(2011년)를 보면, 생활쓰레기를 수거하다 다치는 경우가 36.3%로 가장 많았다. 재활용품 수거(21.7%), 거리 청소(19.7%), 음식물쓰레기 수거(11.4%), 대형폐기물 수거(10.9%)가 뒤를 이었다. 산재 형태로 보면, 넘어짐(27%)이 많고 떨어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비율도 각각 17.2%와 10.6%로 높은 편이다. 2012년 환경부는 지방정부에 청소차 발판을 철거할 것 등을 권고했지만 위험한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청소차 구조 자체가 수시로 타고 내리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하면 청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기만씨는 “발판이 없으면 밤새도록 일해도 관할 구역 청소를 끝내지 못한다. ‘발판 밟기’를 없애려면 청소 인원을 늘려야 하는데 용역업체가 이윤이 줄어드는 일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이전까지는 청소 업무를 지방정부가 직접 관리했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 도입으로 생활폐기물 처리를 대행할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민간 위탁의 길이 열렸다. 이후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용역업체를 선정해 대행수수료(이윤 및 일반관리비의 15~20% 보장)를 지원하며 청소 업무를 외주화했다.

용역업체는 일반적으로 환경미화원의 노동 강도는 높이고 임금은 줄여 지방정부가 책정한 대행수수료보다 더 많은 이윤을 챙기려 한다. 특히 일부 용역업체들은 노동자 수나 청소차 가격 등을 부풀려 돈을 빼돌리거나 환경미화원의 임금을 야금야금 떼먹기도 한다. 최근 서울 강동구 청소용역 ㄱ업체와 강남구 청소용역 ㅍ업체가 논란이 됐다. ㄱ업체는 구청에서 청소차 보험료로 4800만원을 책정받고도 사고가 발생하면 환경미화원에게 수십만원씩 배상금을 청구했다. 환경미화원이 강동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항의하자 ㄱ업체는 2013~2016년 환경미화원에게 공제했던 275만원을 돌려줬다. ㅍ업체는 환경미화원 임금과 밥값을 월 40만원씩 떼먹고 천연가스 청소차에 경유를 넣은 것으로 속여 원가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선인 의장은 “우리 정부가 민간 위탁하는 환경미화 예산은 연 1조5000억원 정도인데, 통상 이 중 30%가 용역업체의 몫”이라며 “공공서비스를 민간에 떠넘김으로써, 종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 나빠지고 서비스 품질은 더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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