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withbee@hani.co.kr 고 이한빛(사망 당시 28살) 피디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많이 꼬여 있었어요. 이십대의 삶은. 항상 더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앞선 단계의 고민을 채 마무리하지 못한 도약이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씨제이이앤엠(CJ E&M)의 피디가 됐지만, 정작 촬영 현장은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이 피디는 조연출로 일했던 드라마 <혼술남녀>(tvN)가 인기리에 종영한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6일, “나를 버티게 했던 동력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니 남은 선택이 없네요”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안녕하세요. 24시팀 황금비 기자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 이한빛 피디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첫 기사에 채 담지 못한 고인의 이야기와, 고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장 한가운데에 앉은 고인의 어머니 김혜영(59)씨는 줄곧 “한빛이는 참 착한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1월 씨제이이앤엠 피디로 입사한 고인은 첫 월급의 반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 경제력이 있으니까, 결혼 자금을 위해 적금을 들어라”라는 부모님에게 아들은 “돈 벌면 하고 싶은 게 있었다”며 “내년부터 적금을 들겠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은 월급 대부분을 세월호 4·16연대, 케이티엑스(KTX) 해고승무원, 기륭전자 등에 후원금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첫 작품인 <혼술남녀> 조연출로 촬영에 돌입한 뒤, 시간이 갈수록 아들의 얼굴은 상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새벽에 들어온 아들과 겨우 함께 아침을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혼술남녀> 마지막 촬영을 마친 10월21일 아들은 사라졌고, 닷새 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회사 쪽은 지난 6개월간 3차례의 서면 답변을 통해 “고인의 성격과 근무태만의 문제였다”고 주장했지만, 스태프들은 “근무환경 자체가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근무태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고인의 휴대전화 통화기록과 촬영 스케줄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 고인이 촬영에 투입된 55일간 쉰 날은 고작 이틀, 하루에 3~4시간 쪽잠을 자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고 이한빛 피디의 씨제이이앤엠 인턴 시절 이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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