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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기업 앞다퉈 “유연근로”…인력충원 없인 노동강도만 높일 위험

등록 2018-06-26 21:25수정 2018-06-26 22:04

[노동시간 단축, 준비됐습니까?]
① 탄력근로제, 주 52시간 돌파구 될까
※ 그래픽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26일 정부가 제시한 유연근로시간제(유연근로제) 활용 방안의 핵심 취지는 업무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배분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주 최대 68시간 노동에 길들여진 노동 현장이 7월1일부터 주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근무제를 받아들이려면, ‘업무시간 조정’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제도가 자칫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정부의 ‘유연근로제 적극 활용’ 방침에 반발하고 나서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 출근일과 노동시간 명시해야

고용노동부의 유연근로제 가이드를 보면, 가장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이는 유연근로제의 형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다. 이는 일이 많이 몰리는 기간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다른 기간의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적으로 법정 노동시간(주 40시간)을 맞추는 노동 형태를 뜻한다. 예컨대 일이 몰린 주에 40시간을 넘겨 50시간을 일했다면, 그다음 주에는 10시간을 뺀 30시간만 일하는 식이다. 운수·통신·의료서비스업처럼 연속해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거나 냉난방장비 제조업, 음식서비스업처럼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업종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려면 사용자는 노동조합 등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 특히 탄력근로 기간을 명확히 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예상할 수 있게 출근일과 날짜별 노동시간을 명시해야 한다. 또 일이 몰릴 때라도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에 한계가 있다. 단위 기간이 2주 이내면 특정 주의 노동시간은 48시간, 3개월 이내면 52시간(하루 12시간)을 넘지 못한다. 다만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고도 연장근로가 필요하다면, 또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합의가 있으면, 1주 12시간 한도에서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2주 단위이면 특정 주에 60시간(48+12), 3개월 단위면 특정 주에 64시간(52+12)까지 늘릴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휴일·야간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탄력근로제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이를 도입하면 1개월 이내 일정 기간의 단위로 정해진 총 노동시간 범위 내에서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 하루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간주근로시간제는 출장 등으로 사업장 밖에서 일해 노동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소정 노동시간이나 통상 필요한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신문사나 방송사, 연구단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노동자 재량에 맡겨야 하는 일로, 노사가 합의한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유연근로제는 애초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도인데도 활용도가 낮았다. 10인 이상 사업장의 탄력근로제 활용도는 지난해 3.4%였다. 그동안 주당 68시간까지 합법적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고, 법정 노동시간을 적용받지 않는 특례업종 범위도 넓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 최대 52시간제 시행을 앞둔 지금은 많은 사업장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움직임이 보인다. 특히 탄력근로제가 많다.

■ “인력 충원 없는 유연근로는 꼼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파악한 결과를 보면, 일부 철도와 지하철, 버스업체 등은 최근 탄력근로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올 초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특례업종에서 빠진 버스의 경우,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자동차노동조합연맹 등이 정부와 합의해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에스(GS)건설 등 건설사, 게임회사 같은 아이티(IT) 업계, 홈쇼핑 업체, 호텔 업계, 대형 여행사도 각기 다른 유형의 유연근로제 도입 채비를 서두른다.

노동계가 각 사업장의 유연근로제 도입 흐름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 충원 없는 유연근로제 도입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한화갤러리아의 상당수 노동자는 이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가 사실상 배제된 채, 줄어든 근무시간에 일을 마쳐야 해 업무의 강도만 높아졌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 회사 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에 진행한 유연근로제 인식 조사에선 896명의 응답자 중 약 90%가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주52시간 연착륙 위해
유연근로제 ‘가이드라인’ 내놔
도입하려면 노사 합의 반드시
연장근로 포함 주64시간 한도

철도·지하철·버스 탄력근로 합의
건설·게임·홈쇼핑도 조정 서둘러

휴식시간 보장 ‘안전판’ 빠져
건강 위협하고 산재 내몰수도
노동계 “또 사용자 친화 정책”

노조는 “인력 충원이 없는 유연근로제는 사용자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크고, ‘저임금 고강도 노동’ 구조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위해 사람을 새로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유연근로제를 활용해 위법 우려만 회피하려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노동시간 단축분만큼 신규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답한 기업은 25.3%에 그치기도 했다.

유연근로제를 시행하면서 휴식시간에 대한 적절한 보장 대책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탄력근로제에다 연장근로까지 더하는 경우 사실상 하루 노동시간 제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노동자가 ‘휴식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휴식시간이 줄면 스트레스 반응 체계에 교란이 오고 호르몬에 이상이 생기며, 장기 지속되면 심혈관계에 영향을 준다. 하루 연장노동시간이 8시간 이상이면 산업재해율이 높아지기도 한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법적·문화적 규제가 약한 한국에서 유연근로제 활성화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과 함께 특례업종에만 적용하기로 한 ‘11시간 최소 휴식시간제’를 유럽처럼 노동자들에게 보편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유럽 ‘최소 휴식시간 보장’ 강조”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유연근로제 활용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관련 보고서(2015년)를 보면 프랑스도 연간 1607시간을 한도로 4주와 1년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규 노동자의 평균 실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을 넘지 않는데, 탄력근로제를 적용한 경우에도 10시간의 하루 노동시간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유럽연합(EU)의 ‘노동시간 지침’이 정한 대로 모든 노동자에게 하루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한다. 법으로 전체 노동시간의 총량과 최소 휴식시간을 강제하는 것이다.

독일의 탄력근로제도 6개월 또는 24주 단위로 1일 평균 8시간을 넘지 않는 한에서 하루에 1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 계좌제’를 통해 초과된 노동시간을 적립하고 일정 시일 안에 정산해 장시간 노동을 억제한다. 초과노동을 돈이 아닌 휴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제노동기구나 유럽연합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보편적 휴식 보장을 강조하는데 한국은 휴식을 노동의 보상으로 보는 관점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유연근로제 활용 방침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가 높지만, 정부는 ‘노사 합의가 중요하다’는 원론적 태도만 밝히고 있다. 고용부는 “유연근로제의 성공적 도입과 운영을 위해 제도별로 취업규칙 변경이나 노동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 등 요건을 확인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도입해야 한다. 세부 운영규정을 마련해 노사 간 다툼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기용 이지혜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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