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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계에 임금삭감 요구하려면, 낮은 기본급 체계부터 바꿔야

등록 2018-06-28 05:00수정 2018-06-28 14:42

[노동시간 단축, 준비됐습니까?]
② ‘임금 삭감’ 없이 가능할까

노, ‘임금후퇴 우려’ 당연하지만
일·가정 양립-시간주권 확보 등
큰 틀에서 노동시간 접근할 필요

사, 인원확충해 노동강도 줄이고
낮은 기본급에 온갖 수당 붙이는
‘왜곡된 임금체계’도 개편 시급

정부, 저임금 노동자 등 지원책을
※누르면 확대됩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노동계의 가장 현실적인 우려는 ‘임금 삭감’이다.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만큼, 실질임금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한테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 걱정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에 대해 여러 노동 분야 전문가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임금 유지’에 머물면 제도 개선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생활 양립과 노동자 중심의 ‘시간 주권’ 확보 등 좀더 큰 틀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27일 민주노총의 ‘노동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시행 대응’ 문건을 보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가 나타난다. 주 40시간(연 1800시간)의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강화 방지를 위한 ‘인력 확충’,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 방지’ 등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문건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을 위해 정부 재정 지원을 포함해 ‘현재 실질임금 보전을 요구’할 것”을 주된 대응 기조로 제시했다. 실제 현장 노동자 사이에서 그만큼 임금 후퇴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다.

문제는 ‘실질임금이 줄지 않는 노동시간 단축’의 실현 가능성이다. 현재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52시간(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멕시코(2348시간) 다음으로 많다. 오이시디 평균(1707시간)에 견줘 345시간 많고, 가장 적은 독일보다 4.3개월(하루 8시간 한달 22일 노동 기준)을 더 일한다.

한국이 이런 장시간 노동과 그에 따른 폐해를 극복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노동 전문가가 노동계의 ‘임금 삭감’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노동계에 좀더 종합적인 고민을 주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무제(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과도한 ‘초과근로’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할 때와 달리, 이번엔 주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넘어서는 초과근로를 줄이자는 것”이라며 “사용자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적절한 인력 충원을 약속한다면, 노동계도 임금 보전을 과도하게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짚었다. 앞서 노·사·정은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에 합의하며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였다. 법정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만큼, 임금 수준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 당시 노·사·정 합의였다.

노동계가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주도하려면, 전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동이 곧 ‘돈’이기도 하지만 노동자 자신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며 “이번 기회에 노동계가 ‘시간 주권’을 화두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의 주도권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계가 임금 일부를 내놓고 ‘일자리 나누기’ 등에 앞장선 사례가 없지는 않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7월 산별중앙교섭을 타결하면서 “2017년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보건의료 분야의 좋은 일자리 창출과 인력 확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합의했다. 금속노조도 올해 초 ‘원청’ 현대·기아·지엠(GM)의 기본급 인상률을 ‘하청’인 그외 사업장들보다 2.1% 낮춰 잡은 ‘하후상박형’ 임금협상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양보의 균형’이다. 노동계에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임금 감소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려면, 사용자도 그에 따른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 추가 인력 투입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입맛에 맞게 기본급을 낮추고 초과수당으로 임금의 일부를 보충하도록 설계한 임금구조도 손봐야 한다.

정부도 노동계의 이해와 양보를 끌어낼 종합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에 이은 임금 감소의 피해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저임금 노동자 대책이 시급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낸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30인 이상 300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이다.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 404만1천명 가운데 12.6%(51만명)가 52시간을 초과해 일했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딱 그 절반인 6.3%에 그쳤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따른 실질임금 감소의 피해가 이들한테 집중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액이 노동자 1인당 월 20만원씩 나타난다면, 이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 임금 감소분에 대한 정부 직접 지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교육훈련·투자 비용 지원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이지혜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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