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KTX 탑승자 김경민씨가 전하는 긴박했던 사고상황
“기차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기차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었다”
주말인 8일 아침 7시35분, 강릉에서 서울로 운행하던 KTX 806호 열차가 탈선했습니다. 승객 13명과 직원 1명이 다쳤죠.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지만 이번 사고를 잘 짚어보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고 당시 열차에 탑승하고 있었던 김경민씨에게 사고 당시 상황과 문제점을 들어봤습니다.
“‘이제 출발한다’고 가족에게 메시지 보내고 이제 경치를 좀 볼까하는 딱 그때였어요. 창밖에서 연기 같은 게 보였어요. 원래 기차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뭔가 흔들리는 느낌, 기차가 이럴 수가 없는데…. 비행기는 조금 기울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기차가 마치 선로위에 있는게 아니라 공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기차도 이렇게 흔들리는구나’ 생각하는데 지진처럼 큰소리가 났고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썰매를 타는 것처럼 (반대편 승객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캐리어(여행용 가방) 굴러가고 승객들 소리치고 그런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선반 위에 무거운 짐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승객이 평소보다 적었어요. 그래서 짐도 당연히 선반에 아주 많지 않았어요. 만약 캐리어가 선반 위에 올라가 있었다면 위험했을 것 같아요. 사고가 나자마자 (든 생각이) 비행기는 (선반에) 뚜껑이 있잖아요. ‘뚜껑 없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0도 정도 기운 열차 안에서 김씨는 이동은커녕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절대로 그냥 서 있을 수가 없어요. 수평은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한걸음도 뭘 잡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었어요. 앉아 있는 상황에서도 너무너무 어지럽고. ‘쾅’하고 기울어지자 마자 두세번 정도 흔들렸던 것 같고요. 흔들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굉장히 어지러웠어요.”
김씨는 사고가 난 순간 ‘세월호’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정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때 바로 그 상황이 연상되고 (이렇게 기울었을텐데)그 안에서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고요.”
사고로 승무원도 쓰러졌습니다. 승무원은 긴급한 목소리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제가 앞칸에 가서 방송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내방송은 없었고 승객들은 알아서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앞에서 승무원이 넘어졌어요. 그분도 빠르게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구두를 신고 (있어서) 계속 미끄러지는 상황이었어요. (열차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요. 승무원이나 기관사분들이 나중에는 많이 애써주셨지만, 그분들의 지시에 따라 저희가 탈출한 건 아니었어요. ‘지시를 받을 수 없구나 알아서 탈출해야 하는구나’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내리면서 두렵더라고요. 선로가 위험한 상황인지 아닌지 모르니까요.”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건 함께 탑승했던 군인 승객들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승객들 돕는 걸 보면서) 울었는데요. 알아서 움직여야되는 상황에서 같은 승객이었는데 군인들이 굉장히 안정된 모습으로,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치 메뉴얼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승객들 도와서 착착 내려주시고 우왕좌왕하지 않고 도와주시니까 마치 코레일 직원들이 ‘안심해도 된다’고 메시지를 보내줬다면 느꼈을 그런 감정을 느꼈어요. 너무 멋져 보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다 안아서 기차에서 내려주시고. 어떤 승객분은 ‘못내리겠어요’하고 소리지르고 그러셨는데 굉장히 침착하게 ‘짐 저희 주시고, 난간에 앉아보세요’하면서 내리는 거 도와주시더라고요.”
사고 관련해 코레일의 안내를 받은 건 사고 발생 20분이 지나서였습니다.
“사고 발생 후 20분쯤 됐을 때 구급대원과 강릉역장이 오셨어요. 그때 처음 선로 가까이 가지마라, 다친 분 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선로가) 위험한 곳이었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김씨는 승무원들이 이런 사고에 훈련돼 있어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안전업무는 이 승무원의 업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열차에는 기장과 열차팀장, 승무원 등 모두 3명의 코레일 혹은 코레일 자회사 직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안전 담당자는 코레일 직원인 ‘열차팀장’ 한 사람뿐입니다. 코레일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인 승무원은 승객인사, 승차권 확인, 안내방송 등 승객서비스 업무를 맡습니다. 이런 구분을 이해하려면 2006년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의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승무원들의 직접 고용 요구에 코레일은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업무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따라서 직접고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죠. 법원은 코레일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사고로 이런 인위적인 업무구분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가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KTX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면 파견법을 위반하는 상황이라 긴급 상황에 대비한 교육 훈련이나 매뉴얼이 따로 없다. 그나마 진행되는 승무원에 대한 안전교육은 분기에 6시간씩 듣는 인터넷 강의가 전부다.”
작은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취재 임재우 장예지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연출 위준영 피디 marco042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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