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인촌로 한 주택가 건물 지하에 있는 미싱공장에서 노동자가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 34년 경력의 봉제노동자 이정기(52)씨는 코로나19로 일년 중 가장 벌이가 좋은 ‘대목’을 놓쳤다. 옷을 만드는 영세 봉제공장들은 설 연휴가 끝난 2월 초부터 5월 무렵까지 주문량이 가장 많은데, 올해는 이 기간 일감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1월에는 코로나19가 먼저 확산한 중국에서 원사 수입이 끊겨 일을 할 수 없었고, 국내 피해가 본격화한 2월 이후에는 수출길이 막히면서 거의 놀다시피 했다. 이씨는 “코로나19로 수입이 최소 50%, 많게는 80%까지 줄어든 경우도 봤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사업장의 90% 이상이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인 봉제공장들은 4대 보험 미가입은 물론, 월급도 계좌가 아닌 현금봉투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이씨와 동료들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소득 감소분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박완규(51)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부지부장은 요즘 조합원들에게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 방법을 강의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그는 “지원금 신청 방법을 들으러 오는 조합원들의 30% 이상이 폐업 등으로 실직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평균 연령이 62살인 조합원들에게 지원금 신청을 위한 서류 구비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박씨는 “일부 업체 사장들은 노조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사업주의 확인이 필요한 ‘노무 미제공 사실 확인서’ 등을 내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신청 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조는 서울 관악구와 성동구를 중심으로 수도권에 약 300~400개(종사자 2500여명)의 영세 제화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해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은 단 1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관악구 한 제화공장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봉제·주얼리·제화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이력 증빙 아이디(ID)카드제’의 도입을 제안하고 나섰다. 정부가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런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근무 이력을 증빙해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이정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은 26일 ’코로나19 위기극복 도심제조노동조합 간담회’에서 “전체 사업장의 90% 이상이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인 봉제공장들의 경우, 4대보험 미가입은 물론이고 월급도 계좌가 아닌 현금봉투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소득 감소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정기 지회장은 “지원금 신청 때 사업주의 협조가 필요한 노무제공 확인서 대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자의 근무이력 정보를 관리하는 아이디 카드를 도입해 향후 비슷한 위기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봉제·제화 업종에서는 평균 70% 안팎 종사자들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실업급여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다음달 1일부터 정부가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3개월을 지원하는 ‘코로나19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원 요건인 소득 감소와 무급휴직 일수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서류를 구비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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