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휴가를 얻은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대현씨 가족이 14일 오전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불당리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빠, 물싸움하자. 엄마도 들어와!” “아우, 추워. 얼음물이네, 얼음물.”
14일 오전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불당리 계곡.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김소희(8)양이 아빠 김대현(47)씨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바위틈에서 잡은 다슬기를 자랑했다. 키즈카페보다 물놀이를 좋아한다는 소희에게 이날 외출은 특별했다. 아빠가 택배노동자로 일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빨간 날’이 아닌 평일에 휴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국내 택배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에 처음 시행된 ‘택배 없는 날’ 덕분이다. 김씨의 부인 이현진(46)씨는 “남편이 명절 이외에 금토일 사흘을 쉬는 건 한번도 없었던 일이라, 택배 없는 날 소식을 듣곤 얼떨떨했다”며 “결혼 후 여름휴가를 계획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올여름은 김씨에게 “20년 택배하면서 이래저래 제일 힘든” 계절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송물량이 30% 이상 늘어난데다, 무더위에도 숨이 차는 걸 감수하고 종일 마스크를 쓰고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열흘 넘게 이어진 폭우로 상품이 비에 젖을까 마음을 졸이는 이중고도 겪었다.
그나마 택배 없는 날 하루 전인 13일은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날 그는 새벽 6시에 출근해 분류 작업을 마친 뒤 오후 1시30분께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 효자촌 소재 아파트 28개동을 돌았다. 500여건을 배달하고 나니 저녁 8시가 훌쩍 넘었다. 김씨는 “오전에 하루 6~7시간 걸리는 분류 작업만이라도 우체국처럼 전담 인력이 처리한다면 장시간 노동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며 “물량이 많은 날은 밤 10~11시에 퇴근하니, 와이프에겐 ‘나쁜 남편’, 애들한텐 ‘나쁜 아빠’”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20년만에 휴가를 하루 앞둔 13일 저녁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김대현씨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배달을 하고 있다. 성남/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씨 같은 택배노동자들의 소원에 응답하듯 13일 정부와 택배업계는 “질병·경조사 등의 경우 (택배종사자가) 쉴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장 그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7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나흘을 쉬는 동안 동료들이 일을 대신했는데, 영업소가 수수료의 일부를 김씨에게 부담하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건당 수수료 720원 가운데 400원은 본사가 지급하지만, 나머지 320원을 영업소가 임의로 김씨의 수입에서 차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달 전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내려갔던 이틀 동안 웃돈을 줘야 하는 용차(대체인력)를 썼을 때도 영업소에서 그 인건비 100만원을 내 수입에서 차감했다”며 “돈이 무서워 기사들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첫째 아들과 띠동갑인 늦둥이 소희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은 김씨는 하루빨리 자신과 같은 택배노동자들이 주 5일 근무를 보장받길 바란다. 그는 “시작이 반이란 말처럼 부디 택배 없는 날을 시작으로 택배노동자들의 휴식권이 확대됐으면 좋겠다”며 “우리의 땀방울이 회사를 이처럼 키워온 만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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