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 택배노동자가 김 아무개씨의 유족 발언을 들다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신정릉대리점에서 일하던 김 아무개씨는 지난 12일 과로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8일 새벽 4시쯤 배송물건이 많아 너무 힘들다는 문자를 동료에게 남기기도 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줄을 잇는 등 이미 ‘빨간불’이 여러 차례 켜졌었는데도, 정부와 택배업계는 껍데기뿐인 약속만 거듭할 뿐 예견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올해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과로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정부와 택배업계는 “택배 종사자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의 대책들을 내놨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가 한국통합물류협회, 씨제이(CJ)대한통운 등 주요 택배회사들과 함께 발표한 ‘택배 종사자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엔 “택배기사가 심야시간까지 배송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영업점은 택배기사의 처우개선 등을 위해 관계법령을 준수한다” 등의 방안이 들어 있다. 매년 8월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추석 성수기를 앞둔 지난 9월에도 정부와 택배업계는 “심야시간까지 배송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종사자가 원할 경우 물량·구역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며, 건강검진 및 전문 의료 상담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한진택배 서울 동대문지사에서 일하다 지난 12일 숨진 채 발견된 김아무개씨는 새벽 4시28분 “이제 집에 들어간다” “어제도 새벽 2시에 들어갔다”고 동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달 사이 정부와 업계가 ‘심야배송 자제’를 두차례나 약속했는데도, 김씨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16번지 (물량을) 안 받으면 안 될까요”라는 애원 섞인 메시지 역시, “종사자가 원할 경우 물량·구역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영업점이 관계법령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약속 역시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다. 김씨는 1년 넘게 일하고도 ‘여기서 일한다’는 입직신고가 아예 안 되어 있었다. 씨제이대한통운 서울 강북지사에서 일하다 숨진 김원종씨의 경우, 3년 동안 일했는데 올해 9월에야 처음으로 입직신고가 됐다. 그나마 산재보험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적용 제외 신청서’가 강요·대필로 작성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물량 폭증이 예견된 추석 성수기를 앞두고 정부와 택배업계가 인력 지원을 약속했으나, 택배 노동자들의 부담은 거의 줄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9월17일 정부는, 택배 노동자 과로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는 서브터미널 분류 작업에 택배업계가 하루 2067명 등을 지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19일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씨제이대한통운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설명을 종합하면, 서브터미널 지원 인력은 분류 작업이 아닌 상하차(대형 화물차에 택배상자를 싣는 작업) 작업 등을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분류작업은 택배기사 고유의 업무이기 때문에 지원 인력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이 업체 쪽 설명이다. 택배연대노조는 “최근 숨진 두명의 택배기사가 일하던 영업점 두곳에도 인력 지원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주부터 3주 동안 주요 택배회사 서브터미널 40곳과 대리점 400곳을 대상으로 과로를 막기 위한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긴급점검을 실시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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