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추모 국화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에서 일하던 택배노동자가 대리점의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20일 “새벽 6시8분께 경남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하치장에서 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김아무개(50)씨가 숨져 있는 것을 동료 택배기사가 발견했다”고 이날 밝혔다. 김씨 옷 호주머니에는 에이(A)4 용지 2장에 출력한 유서와, 손으로 직접 쓴 4장짜리 유서 등 두 종류의 유서가 들어있었다.
김씨는 유서에 “이 일을 하기 위해 국가 시험(화물운송종사자 자격증 시험)에 차량 구입에 전용번호판까지 (감당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200만원도 못 번다. 신용이 떨어져, 저리 대출은 (더 높은 금리의) 대환대출로 돌아가 생각도 안한 원금과 이자 등 한달 120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겼다”고 적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을 생활고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대리점에 유리한 계약 등 ‘갑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 2월 이 구역에서 택배일을 시작하면서 대리점에 보증금 500만원, 권리금 300만원을 냈다. 그는 “이런 구역은 소장(택배노동자)을 모집하면 안 되는 구역임에도 보증금을 받고 권리금을 만들어 팔았다. 심지어 집하거래처 이사로 (택배노동자가 벌 수 있는) 수익이 줄고 있음에도 자기들(대리점) 이익만 신경쓰고 있었다”고 분노했다. 택배연대노조는 “대리점이 택배노동자에게 ‘소장’이라는 직함을 주면서 권리금까지 받고 배달구역을 사고파는 업계 관행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일 새벽 극단적인 선택을 한 로젠택배 택배기사가 남긴 유서. 택배연대노조 제공
김씨는 일을 그만두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 쪽은 김씨에게 후임자를 구하지 않으면 퇴사할 수 없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차에 구인광고도 써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택배연대노조는 “대리점이 택배기사와 계약을 할 때, 그만두려면 후임자를 찾아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거나, 후임자를 구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두면 한 달 이후에나 지급되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에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의 유서 곳곳엔 대리점이 ‘갑질’을 했다는 주장이 적혀있다. 그는 “(대리점이) 한여름 더위에 하차 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중고 이동식 에어컨도 사주지 않으면서 20여명을 30분 일찍 나오게 했다. 비트코인 채굴기에 투자할 돈은 있으면서, 지점에 투자하라면 돈 없다는 이유만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또 “부지점장은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하차 작업 자체를 끊고 소장을 불러 의자에 앉으라며 자기가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냈다. 소장을 소장이 아니라 직원 이하로 보고 있음을 알았다”고 자조했다.
최원형 기자, 창원/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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