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주최 각계 대표단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해 분류인력 별도투입과 노동시간 단축조치 등을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지난 20일 씨제이(CJ)대한통운에서 택배 간선차량을 몰던 노동자가 일터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졌다. 고인은 숨지기 직전 30시간이 넘게 일하고 있던 것으로 보여,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배송 물량이 늘어난 가운데, 과로사 추정 등으로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2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씨제이대한통운에서 근무하던 30대 노동자가 지난 20일 밤 11시50분께 씨제이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21일 새벽 1시께 끝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고인은 물류센터와 허브터미널, 서브터미널을 오가는 간선차량을 운행하며 택배 물품을 운반하는 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숨진 노동자의 근무 상황을 살펴보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온 것으로 나타난다”며 “그의 죽음은 명백한 과로사이며, 고질적인 택배 업계의 장시간 노동이 부른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가 유가족 등을 통해 확인한 근무 기록을 보면, 고인은 지난 18일 오후 2시에 출근했다가 다음날인 19일 오후 12시에 퇴근했다. 이어 그날 오후 5시에 다시 출근했다가 다음날인 20일 밤 11시50분에 터미널에서 쓰러졌다. 기록대로라면, 22시간 동안 연속으로 일한 뒤 5시간만 쉬고, 또다시 31시간 동안 연속으로 일하다 숨지는 등 그야말로 살인적인 근무 일정을 감당해온 것이다.
유가족은 고인이 앞선 12일에도 오후 4시께 출근했다가 15일 오후 2시에야 집에 왔고, 고작 2시간만 쉰 뒤 다시 나가서 17일 오후 1시에야 퇴근했다고도 전했다. 대책위는 “간선차량 운행은 주로 야간에 불규칙하게 이뤄지는데, 고인은 배차명령이 떨어지면 집에서 쉬다가도 바로 출근해서 운행을 해야만 했다. 또 코로나19로 인한 택배 물량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고인의 근무 시간이 평소보다 50% 이상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병원에서는 고인의 사인을 “원인 미상의 심정지”라고 했는데, 이에 대해 대책위 쪽은 “과로사로 숨진 택배노동자들 가운데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꽤 있었다”고 밝혔다. “고인이 5년 전 심장과 관련한 수술을 한 적은 있지만, 이미 완쾌해 건강에 별다른 이상은 없던 상황으로 파악한다”고도 전했다. 대책위는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기사 이외에도 택배업계에 만연한 장시간 고된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씨제이대한통운의 사과 등을 촉구했다. 한편 씨제이대한통운 쪽은 이날 “고인은 당사의 간선차 협력업체가 계약한 임시용차 차주가 고용한 기사로 파악되며, 평소 심장비대증으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